“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4:1-17 / 2016년 11월 23일 수요성경공부
미디안 광야에서 피신해 있던 중에 호렙의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민족 해방의 소명을 받지만, 여전히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이 자기에 대한 신뢰감이 없을 것이고, 또한 자신에게 어떤 권위도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언변도 없음을 걱정하면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어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시고, 모세의 형 아론을 보내어 대변인으로 삼아주시면서 그를 애굽으로 보냅니다.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대면하기를 주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었이냐?”고 묻습니다. 무엇을 들고 있었습니까?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는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일 수도 있고, 보행용 지팡이일 수도 있지만, 광야에서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야생동물의 공격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고, 구렁텅이나 덤불 속에 갇힌 양을 꺼낼 때 사용하기도 했을 것이요, 맹독성 뱀이 많은 광야에서 지팡이는 필수품이자 곧 일상적인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이 일상적인 물건이 특별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번역본에는 3절에 나오는 지팡이와 17절에 나오는 지팡이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17절의 지팡이는 다른 지팡이와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지팡이’(출 4:20)입니다. 2절의 지팡이는 양을 치고 있던 모세의 지팡이였지만, 17절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다른 지팡이입니다.
1. 일상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뭔가 특별한 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있는 보통의 것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의 것, 일상의 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음으로 특별해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나에게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두렵고 떨림’이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해방이라는 큰일을 계획하셨고, 모세를 부르셨으니 이 일을 통해 모세는 평온했던 지금의 일상과 작별하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꾸만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저하는 모세에게 당신이 함께하신다는 표징을 보여줍니다.
주저하는 모세에게 함께하신다는 표징을 보여주실 때에, 모세가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지팡이를 사용하셨다는 것과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은 이런 상징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소중한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물질도 재능도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존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내가 비록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부자가 아니고, 지혜가 충만하거나 혹은 육체적으로 연약하다고 하더라도, ‘지팡이’도 특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존재로 삼아주시고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귀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동역자로 삼으십니다.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2. 변화는 두렵게 하는 것과 대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게 합니다. 그러자 뱀이 되었고 다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꼬리를 잡으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는 것은 애굽의 종교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코브라는 애굽 사람들이 사용하는 상징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nus-누스/동사)’라는 말은, 움찔 놀라서 뒷걸음질치거나, 기겁하여 도망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 표징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여기에서의 문둥병은 오늘날의 한센병이나 나병이 아니라, ‘악성피부병’입니다. 다시 품에 넣었다 꺼내어 보니 제 살로 되돌아왔습니다. 이 정도의 표징이라면, 그들이 보고 믿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주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표징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거든 나일 강물을 취하여서 육지에 부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나일강물이 육지에서 피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애굽 땅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을 통해서 실현되었습니다.
‘뱀, 악성피부병, 피’ 이런 것들은 본능에 따라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하고많은 것 중에서 하나님은 하필이면 왜 이런 것들을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역사의 변화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과 대면해야만 가능하다는 암시를 주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꺼림칙하고 부정적인 것조차도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겠지요.
요즘 대한민국의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상상 이상의 막장드라마 같은 일들이 모두 현실로 드러나는 요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감추어져 있는 것보다 이렇게 다 드러나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새 출발을 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요, 그동안 거짓으로 포장되었던 불의한 일들을 다 알게 되었으니 더는 불의한 자들의 불법한 행위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요. 드러나는 일들은 뱀. 악성피부병, 피보다도 더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을 대면하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을 수 있겠습니까? 잘 극복하고 나아가야지요. 온갖 부정과 부패가 물러가고 정의가 바로 세워지기를 기도하십시다. 지금 대한민국은 더 정직한 나라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서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낙담하지 마십시오.
3. 동행을 주십니다.
모세는 여전히 주저합니다. 좋게 말하면 진중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합니다. 급기야는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데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출 4:10)라고 합니다. 바로와 담판을 짓고 백성을 설득하려면 언변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떠난 후 제자들에게 닥쳐올 고난을 예고하면서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대신 말씀해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입에 뻣뻣하고 혀가 둔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가 하는 점이고, 충실하게 그분의 입이 될 것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모세도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하고 탄원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역정을 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에 익숙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정과 분노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역정과 분노는 깊은 사랑과 모세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정을 내시면서도, 모세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시어 동행할 아론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행을 주셨습니다.
혈육을 나눈 가족은 물론이요,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교회공동체가 바로 우리의 동행입니다. 서로서로 위로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행자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서로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4.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자는 부족함을 인식하는 자입니다.
소명 앞에서 거듭되는 모세의 주저함에 대한 오늘의 본문은 모세가 얼마나 우유부단한 사람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의 영웅은 잘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우성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옛 조상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해방해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지요.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도한 자기 확신에 빠져서 “내가 아니면 감히 누가 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진심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교만에 빠져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자기가 영광을 누리고자 합니다.
“내가 아니면 감히 누가 하겠느냐?”는 독선과 고집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예배 시간에 읽었던 전도서 10장 15절 말씀에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할 때에, 우매한 자들이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믿는 교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만한 자들은 수고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수고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자기들만 피곤해 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지요.
언제 어느 곳에서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자들을 들어 쓰시는 분이시오, 그들이 가진 것이 아무리 부족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특별하게 만들어가시며 뜻을 이뤄가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허투루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의 귀한 일에 사용되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 사용하실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