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의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12/2016년 11월 2일 수요성경공부
요셉 덕분에 애굽 땅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해(출 1:7)졌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애굽 왕은 위협을 느껴 그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합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합니다. 그리하여, 산파들을 불러 히브리 여인들이 아기를 낳을 때. 아들이면 죽이고 딸만 살리라는 전갈을 내립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었기에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백성에게 명령하여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버리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태어났고,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 버려졌고,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어 바로의 궁전에서 자라게 됩니다. 앞에서 공부한 대로 생명살림의 일꾼이 여성들을 통해서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장성한 후에, 애굽 사람을 죽이고 이 일로 바로에게 쫓겨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를 만나 아들 게르솜(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을 낳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 해가 흘렀고 애굽 왕은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강제노역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해 이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해방하고자 모세를 부르십니다. 여기까지가 호렙에서 여호와께서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부르시기 전까지의 상황입니다.
1. 호렙의 신이신 하나님
모세를 부르신 곳은 광야와도 같은 ‘호렙’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주로 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소외된 곳, 외딴곳 호렙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주로 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지배자들의 통치를 합리화시켜주곤 했는데, 하나님은 도망자인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호렙은 ‘황량한 곳, 불모지’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호렙은 특정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곤고한 우리 삶의 정황을 이르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외된 자들의 하나님이요, 변방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 떨기나무에 현현하신 하나님
모세가 호렙에 이르렀을 때 신기한 광경을 봅니다. 떨기나무가 불타고 있는데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떨기나무는 작은 관목입니다. 히브리어로 떨기나무는 ‘쇠네 혹은 스네’인데 ‘보잘것없다, 하찮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곳에 현현하셨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조금 확대해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 별 볼 일 없는 사람, 하찮은 사람에게 현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찮은 떨기나무에 하나님이 현현하시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떨기나무가 사그라지지 않고 타오릅니다. 빛이 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하찮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현현하시면, 그의 삶이 빛나게 됩니다. 호렙, 그 ‘소외된 광야’에서 ‘보잘것없는’ 떨기나무에 현현하신 하나님,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수많은 상징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현현하시어 여러분의 삶이 빛나시길 바랍니다.
떨기나무는 촛대로 상징화되었는데, 떨기나무를 상징화한 촛대가 가진 상징은 하나님과 인간이 대면하고 있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제단 촛대에 불을 밝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대면하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불붙은 떨기나무가 사그라지지 않자 신기해서 모세는 다가갑니다. 불타는 떨기나무는 매혹적이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동반했을 것입니다. 이 두려움과 매혹, 이것이 종교체험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종교체험을 ‘누미노제(거룩한 체험)’이라고 하는데 두려움과 매혹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라는 영어단어가 ‘religion'인데, 지금은 종교라고 번역하지만, 본래의 뜻은 ’공포, 두려움‘이었으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3. 일상으로 오시어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는 모세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일상의 장소가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어라.” 이제 그곳은 하나님과 모세가 대면하는 자리, 관계하는 자리이며, 거룩한 장소입니다. 일상의 장소가 거룩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말씀의 실상(實相)/ 구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宇宙), 허막(虛莫)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다.”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은 그 어느 곳이든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지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곳은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와도 같은 하찮은 곳, 보잘것없는 곳에도 현현하시는 분이시며, 그것조차도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귀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시는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뿐 아니라 여러분의 이웃과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과 관계 맺고 있는 거룩한 것이니 귀하게 여기십시오. 심지어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조차 말입니다.
4. 동역자로 부르시는 하나님
거룩한 체험을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불러주신 것만도 감사한 데, 하나님은 함께 일하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동역자로 부르셨듯이 우리도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반드시 함께 일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이 바로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왜 호렙 떨기나무에 오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부르짖음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도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하느님 나라 이루소서!”로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다 아뢰지 못하고 “주여!” 탄식할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나님 나라 이루소서!”라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형태를 갖춰 기도하기도 전에 하느님은 마치 아가의 옹알이를 다 알아듣는 것처럼, 다 알아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응답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다는 말씀이요, 우리와 대면하신다는 말씀이요, 그 말씀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거룩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들이 거룩하기에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신발’이 상징하는 바는 ‘살아온 이력’입니다. 그러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이력을 버리고, 벌거숭이로, 무장 해제를 하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말씀입니다. ‘신발’은 단순히 발에 신고 있는 신발만이 아니라, 불안한 우리의 삶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하며 추구하던 우리의 욕망과 욕심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신발을 벗어버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5.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애굽을 하게 될 것이고,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과정이 험난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험난했지만, 결국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 온 세상의 주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 광야 호렙의 보잘것없는 떨기나무에 현현하신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