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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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30) - 구름 기둥과 불기둥/마지막회

  • 관리자
  • 2017-05-17 0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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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기둥과 불기둥(출애굽기 산책 30/20170517)
출애굽기 40:34-38

 

지난가을에 시작되었던 출애굽기 산책이 겨울과 봄이라는 두 개의 계절을 보냈고, 출애굽기 산책이 시작되었던 즈음부터 이 나라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이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출애굽의 역사처럼, 적폐청산의 꿈을 담아 지난 5월 9일,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전 정부가 남겨둔 인수인계자료는 비록 10쪽짜리에 불과했지만, 지난 7일간 대한민국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국민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비정상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 비정상의 세월을 보내면서 교회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과 회막에 대한 모든 지시가 완료되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성막과 함께 움직이며 새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길 빕니다.

 

▪교회와 정치

 

우리의 삶의 터전은 대한민국입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한 개인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종교,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적인 것들을 일일이 분리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보정치가 있고 보수정치가 있듯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고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진보 정치적인 성향이 있는 분들이 곧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는 진보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수도 필요하고, 이 둘의 중간지점이 중도도 필요하고, 약간 더 오른쪽과 왼쪽인 좌파도 필요하고 우파도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냉정하게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의 처지에서 보면 노예들의 반란입니다. 그러니 이를 무력으로라도 진압해야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처지에서 보면, 인권해방운동입니다. 그 선봉에 선 것이 모세와 아론입니다. 또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도 생각해 보십시오.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는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땅을 강탈하려는 시도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막아내려고 했고, 광야에서 40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던 히브리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나안 땅에 정착해야만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또 어떠합니까? 국가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과 물질과 강대국을 의지할 때 회개를 촉구합니다. 나단 같은 예언자는 왕에게 대놓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은 또 어떻고, 예수님은 또 어떻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이 자신들의 식민정책을 공고화하는 방편으로, 로마에 저항하던 이들을 처형하는 틀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도’라는 호칭은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꿈꾸며 항거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비속어였습니다. 이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였지, 정치적인 입장을 가진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행동 중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어떤 특정한 정파를 지지하기 위한 목적의 정치성은 배격해야 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그중에서도 인권문제나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문제,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들의 불의한 일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어쩌면, 그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일언반구 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며, “아멘!”을 강요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정치행위를 하는 이들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때 의도하지 않게 지극히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

 

회막과 성막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완성되자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고 합니다. 출애굽기에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13장 21-22, 14:24 등에도 등장하는데, 애굽에서 탈출한 이후 이스라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출에굽기 40장 38절, 마지막 절에서 다시금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언급하는 것은 성막과 회막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이들에게 다시금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끝까지 지켜주실 하나님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성막 위에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앞으로 나아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습니다(36-37).

지난 중에 성막과 회막에 대해서 살펴본 바대로 성막은 언제든지 해체되어 운반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나아갈 때가 되면 성막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먼저 떠올라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이 상징은 바로 구름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나아감과 멈춤을 결정하시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자기들 임의대로 나아가거나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오래 머물 수도 없었고, 그곳이 싫다고 해서 빨리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길 위에 선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머물 곳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임시처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4절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켜 ‘본향에서 나온 자, 본향을 찾는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침묵의 소리

 

하나님은 특정한 곳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셔서, 늘 그의 백성과 여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나가고 멈추는 일련의 리듬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성숙한 삶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나아감과 멈춤의 조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아가라고 할 때에 순종하며 나아가고, 멈추라고 하실 때에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아가라고 하시거나 멈추라고 하실 때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신앙적인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구름 기둥이 되고 불기둥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려면 우리의 마음을 비워 마음의 눈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우리의 눈은 제대로 볼 수 있고, 우리의 귀는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는 세상 사람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리는 침묵의 소리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서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런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소리, 다른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야 그 말의 숨은 의도까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깨달으려면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 들리지 않는 소리, 침묵의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행중인 출애굽 사건

 

출애굽사건은 단 1회, 히브리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하여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출애굽기를 읽는 우리는 사실 출애굽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출애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는 인간의 역사가 노예와도 같은 예속의 역사에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깨닫고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애굽의 노예생활과도 같은 속박, 내려놓지 못한 멍에, 아직 다 떨쳐버리지 못한 노예근성 같은 것들이 우리 내면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분단된 현실은 우리를 분단이데올로기의 노예로 만들었고, 무기를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하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과 기도는 우리 민족이 출애굽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역사적인 사명이겠습니다.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속에서 지독한 착취를 당했으며, 해방된 이후에는 동족 간의 전쟁으로 분단과 함께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질’에 대한 집착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삶을 내재화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의 말하는 ‘적폐청산’의 경험이 없습니다. 청산되어야 할 이들은 자신들에게 향할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자신들을 청산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지역, 세대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이런 오래된 해묵은 것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광야생활 중이고, 그런의미에서 진행중인 출애굽 사건의 한 복판에 서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십계명이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으며, 정의로운 사회란 사회적인 약자가 굴욕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기의 삶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애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출 22:21). 새로운 사회가 어떤 정신 위에서 세워져야 할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애굽에서 가장 밑바닥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사람들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끊임없이 사회적인 약자에게 관심을 둘 수밖에 없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폄으로써 하나님을 돕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꾸어주는 행위가 되며, 하나님은 그의 뜻대로 살아간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교는 기복종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심히 부패하여 권력자들의 안녕이나 빌어주는 사이비 종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신발을 벗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다가오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 기회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 기회를 살리십시오.

 

그간 출애굽기 산책 30여 회를 동행하며 걸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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