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마태복음 7:24-27/2016년 9월 28일 수요성경공부
이솝우화에 ‘아기 돼지 삼형제’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 이야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니 무너져 버렸고, 반석 위에 지어진 집은 주초를 반석 위에 두었으므로 비와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혔어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데,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말씀을 들으면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지혜로운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즐거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뉴스를 보니 태풍 ‘차바’로 제주도가 입은 피해는 지난 2003년 ‘매미’ 이후 최강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제가 종달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이라서 아주 생생하게 태풍의 위력을 체험했습니다. 교육관 지붕이 통째로 날아갔고, 하늘에 철판이 날아다니는 상황이었으니 엉성한 집들은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에 어떤 집이, 어떤 담장이 튼튼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지요. 어떤 나무의 뿌리가 깊은지도 알았지요. 이 비유의 말씀은, 언젠가 비가 오고 창수가 오는 날이 있을 터인데, 그때에 지혜로운 자인지 어리석은 자인지 다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 말씀의 부재’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부재’로 인해 불행한 시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고, 교인들도 넘쳐나지만, 아멘도 넘쳐나고, 할렐루야도 넘쳐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비아냥 소리를 듣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도가 없어서 온 것입니까? 성경공부가 없어서 온 것입니까? 아멘이나 할렐루야가 없어서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도도 넘쳐나고, 성경공부도 넘쳐나고, 아멘이나 할렐루야는 우렁찹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장식품 정도로 아는, 실천 없는 신앙, 회개 없는 신앙 때문입니다. 믿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데 사는 것처럼 믿기 때문에 신앙은 장식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만 좋아서 여기저기 성경 공부하는 데만 찾아다니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장식품이 되고 맙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잘한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갑니다. 대체로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자기의 구미에 맞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자들도 말씀의 참뜻을 전하기보다는 교인들을 즐겁게 하는 설교에 치중합니다. 말씀에 진정성도 없고 깊이가 없다 보니 설교가 코미디가 되거나 혹은 거룩함으로 치장하게 됩니다. 어떤 목사는 보통 대화할 때의 목소리와 설교할 때의 목소리가 다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장식품이 되어버린 시대, 이런 시대에서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10년, 20년, 혹은 장로가 되었어도 여전히 신앙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도 같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연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집만 늘어납니다. 그러나 삶에 바람이 불어오면 이런 장식품 신앙을 사진 이들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평상시에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나 반석 위에 세운 집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지혜로워 보이고 좋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거나 창수가 나면 이내 그 차이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기초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2. 말씀은 실천하면서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신앙은 삶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깊어집니다. 삶으로 살아가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아픔도 겪으면서 말씀의 진의를 깊게 깨닫게 됩니다. ‘무릎을 치는 깨달음의 순간!’, 이런 순간들이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합니다. 이런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 송이 보다도 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에 대한 깨달음,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의 신앙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려면 먼저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둘째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의 즐거움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왜 많은 이들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까? 신앙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단계인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지속해서 초보 단계에만 머무릅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교인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교회 안에만 가둬두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이며, 개혁해야 할 것 중의 우선순위에 드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 간증입니다.
“들에 피는 꽃을 보아라!” 그 말씀 그대로 들에 피는 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보니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들의 꽃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저는 지금도 초록 생명을 보면, 그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 어느 것보다도 생생하게 듣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보아라!”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본 것’입니다. 그러자, 거기에서부터 기적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들에 대해서 하나 둘 알아가고 사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하실 일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꽃을 보게 하시고, 훈련되니 그들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사진으로 담게 하시고, 그 사진에 대한 글을 쓰게 하시고, 그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셨을 뿐 아니라, 제 꿈과 계획도 앞당겨서 이뤄주셨습니다. 30대에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50이 되면, 일 년에 한 권씩 나의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출판하겠다. 대략 한 권을 출판할 때 400만 원 드니까, 그 계획을 위해서 한 달에 40만 원씩 적금도 들고……. 그런데 시골교회 목사가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40만 원 적금을 들 수 없었죠. 그래서 포기했는데, 하나님은 제 나이 50이 되기 전에 인세를 받으면서 내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출판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도 제가 게획했던 것보다도 10년을 앞당겨서 말입니다. 물론, 좋은 것만 말씀드린 것이고,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은 “들에 피는 꽃을 보아라!”하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더 깊어지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신비를 알게 됩니다.
3. 우리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모래’와 ‘반석’이라는 대비되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하나의 예화일 수도 있지만, ‘반석’이 상징하는 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의 핵심인 ‘산상수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다음 주면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들었고, 김 목사가 해설한 말씀을 또한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목사 같은 목사라고 생각하는 분 중의 한 분인 ‘좁은길교회’ 박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한국교회에는 산상수훈이 실종되었다. 그러니 맨날 아브라함이 어떻고 요셉이 어떻고, 바울이 어떻다고 우려먹고 맨날 복 받는 이야기만 한다.”고 합니다.
새겨들어야 할 이야깁니다. ‘복 받는 이야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복’이라는 것이 인간적이 욕망을 채워주는 것인 경우는 초보적인 신앙, 신앙의 기초가 놓이기 전이지, 제직이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변함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일 뿐입니다.
우리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반석에 주초를 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그분의 삶을 본받아, 그분의 말씀대로, 그분이 사신대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대한민국에 오시면 어디로 오시겠습니까?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우리의 선 자리가 그곳이 아니라면, 우리의 선 곳은 모래사장입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그러므로 사실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일상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의 언행이 예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예수님이 이해하실만한가? 토닥거리시면서 “그래,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고하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묻고 또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몰래 누군가의 뒷담화를 할 때에 예수님도 동조하며 끄덕이실 수 있는 것인지, 이런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반석에 주초를 세울 수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일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평상시에는 알 수 없지만,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