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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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27) - 입술 신앙, 실천 신앙

  • 관리자
  • 2016-09-21 0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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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신앙, 실천 신앙
마태복음 7:21-23/ 2016년 9월 21일 수요성경공부

지난 시간에 마태복음 7장 15-20절의 말씀을 통해서 ‘나무를 보면 열매를 안다’라는 제목으로 ‘거짓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주옥과도 같은 말씀을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치장하는 데만 사용해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맺는다고 한들 나쁜 열매만 맺습니다. 그들이 나쁜 열매를 맺는 이유는, 원가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있는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거짓선지자들이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시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천국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들의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행했노라고 주장을 하지만,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에서 어떤 이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5:10)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하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나의 욕심을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부드러워서 모든 것을 품습니다. 생명을 품는 흙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좋은 것만 품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것들조차 품어서 깨끗하게 만들고, 그들도 생명을 품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의(義)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품고 사는 것’이 의입니다. 생명은 곧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품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품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하고,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입술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며,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입술 신앙입니다.

 

왜 그들은 입술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도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셨는데 그들의 귀신 쫓아냄과 권능은 왜 불법이 된 것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이 담고 있는 표피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과 귀신축출은 단순히 육체적인 병을 고치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억압과 편견을 깨뜨리고, 믿음 없이 살아가던 이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는 말씀은, 병 고침을 받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든 삶을 떨치고 일어나는 주체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병 고침과 귀신축출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22)하며 자신을 따르는 것을 즐겼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지만, 그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불법한 자들입니다.

 

실천이 없는 입술 신앙은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서 일합니다.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자신의 삶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신앙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직 우리는 감사하면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헌신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실천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2. 실천 신앙은 고난을 동반합니다.

 

나무가 실한 열매를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맨 처음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에는 나무가 풀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 제아무리 풀이 빨리 자란다고 해도 나무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다. 풀에게는 고난의 계절, 겨울이 없습니다. 서리가 내리면 풀은 다 시들어 버립니다.

 

나무는 풀이 알지 못하는 겨울을 견딥니다.

겨울은 상징적으로 고난입니다. 그 고난을 온전히 버텨낸 뒤에야 비로소 나무가 됩니다. 나무의 싹이라고 다 겨울을 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무의 싹은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습니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만이 거목이 될 수 있습니다.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나무의 겨울나기를 잘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어떻게 해야 성장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나무를 보면서 느낀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는 나뭇잎을 떨굽니다. 낙엽이지요. 나뭇잎이 떨어지면 나무는 광합성 작용을 멈춥니다. 광합성 작용을 멈춘다는 것은 더는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지 않으니 목이 마르겠지요.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제 몸에 있는 물을 최대한 배출합니다. 왜 그럴까요? 물관에 물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얼어버리면 나무는 얼어서 죽습니다. 얼어서 부피가 늘어나도 물관이 터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물만으로 겨울을 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월동준비를 하면 이것저것 쟁여놓고, 김장하고, 곳간에 채우고, 옷을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벗어버리고 오히려 자기를 비웁니다. 자기를 비우는 이 작은 행위, 나무의 삶을 통해서 저는 ‘비움의 신앙’을 배웁니다. 처음 나무가 싹을 틔웠을 때에는 끊임없이 채우지만,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비우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비우는 과정’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고백합니다.

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러면, 끊임없이 버리기만 할까요? 봄이 오면 다시 수액이 돌고 연록의 새순이 올라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가 비우는 신앙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채워주시는 것이지요. 이곳에 계신 분들은 이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채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삶 말입니다.

 

3.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 바랍니다.

 

상상수훈 네 번째 시간에 마태복음 5장 5절의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제목으로 공부했습니다. 온유는 헬라어 ‘프라우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약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힌 세고 강한 개가 훈련을 통해서 유순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낮아진 마음의 상태가 곧 ’온유‘이며, ’부드러움‘입니다.

 

지난 주일, 시위 도중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던 백남기 농민이 숨졌습니다. 그 원인과 잘잘못에 대해서는 각기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모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이 자신이 활동하는 블로그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시체장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들을 향해서도 일부 몰지각한 국회위원이 ‘시체장사’라는 막말을 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어쩌다 이렇게 괴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강퍅한 마음이지요. 이 사회는 너무 강퍅해서 부드러움을 잃었고, 유연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인내와 부드러움(온유)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론 원수라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실천 신앙’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우리가 부드럽게 대하면 상대방도 부드러워집니다. 내가 먼저, “미안해”하면 싸움이 더 커지지 않습니다. 조금 손해를 본다고 해도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겠습니다. 많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시편 18편 27절에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말씀하십니다. 잠언 16장 5절에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교만’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교만’은 무엇입니까?

입술로만 다 아는 척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선지자 노릇 하기를 즐기고, 병 고치는 기적과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입술 신앙과 실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산상수훈 28번째 말씀을 나눴습니다. 말씀을 더 많이 배우고, 신앙의 연수가 더 늘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여러분의 신앙이 말보다는 삶으로 살게 되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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