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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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26) - 나무를 보면 열매를 안다

  • 관리자
  • 2016-09-14 0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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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면 열매를 안다.
마태복음 7:15-20/ 2016년 9월 14일 수요성경공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결과물인 열매만 보니까 그게 어떤 나무에서 자란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쌀도 나무에서 얻는 것인 줄로 아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은 나무를 보면, 어떤 열매를 맺는지 알 뿐만 아니라, 더 잘 아시는 분들은 나무의 상태를 보면 좋은 열매를 맺을지 아닐지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과수농가를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좀 더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도 압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도 있지만, 나무를 보아도 열매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하셨는데, 이 시대는 나무를 보고 열매를 아는 선견지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열매를 본 후에야 거짓 선지자들인지 분별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아예, 싹을 보고 알면 뽑아버리기도 수월합니다. 그런데 피와 벼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싹만 보고 잡초인지 아닌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화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참 선지자로 알고 10여 년간 아이들과 가정도 다 내팽개치고 신앙생활에만 몰두하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이단이라고, 거짓 선지자라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돌아왔지만, 그 사이 내버려뒀던 아이들과 가정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10년 속아 살았지만,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 살았던 시간은 10년이었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다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빠져 살았던 결과로 얻는 열매는 당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열매를 맺기 전에 나무만 보고도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나쁜 열매를 맺었음에도 끝까지 미련을 갖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미 나쁜 열매를 맺었는데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는 속임에 또 빠져 들어갑니다. 마치, 가시나무 가지에서 포도를 맺는 기적이 생길 것처럼, 그렇게 믿는 것이야말로 참믿음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포도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거짓 선지자들은 끝내 거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문제는, 거짓 선지자들조차도 자신들이 거짓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다음 주에 다룰 내용이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며 오히려 항변합니다. 우리의 현실에도 이단이 창궐하지만, 이단 사설을 이끄는 교주들은 자기가 진짜 선지자 혹은 예수님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한 신앙을 갖고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려면 우리에게는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안목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혹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21장에 이파리만 무성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정작 예수님이 찾는 열매는 없었습니다. 이단 사설은 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엮어서 자기들 편한 대로 해석하는 데 능합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지는 분 중에는 좀 더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나, 성경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방법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입니다. 이른바, 문자주의, 축자영감설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씀은 해석할 필요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야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구절을 취사선택해서 이것저것 짜깁기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문자주의에 빠진 이들의 문제는, 특정 문자에 대해서는 신봉하면서, 특정 문자에 대해서는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특정 구절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무조건 믿으라!”고 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손가는 대로 성경을 펴보니 요한복음 10장 15절의 말씀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말씀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그런데 어떤 분들은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말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는 말씀만 강조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저주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이 두 말씀을 함께 읽으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인도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인도자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구절만 떼어놓고, 그 성경 구절이 담고 있는 상황 등을 무시하고 읽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차고 넘친다.”고 하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은혜가 차고 넘치는 것인지, 물이 차고 넘치는 것인지, 아니면 홍수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지요. 가뭄 끝에 물이 차고 넘친다는 말은 희소식이지만, 홍수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그 말은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문자로 읽으면 안 됩니다.

 

열매 없이 겉으로 무성하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문자적인 지식을 많은데 삶으로 살지 못하거나, 혹은, 자기에게 맞는 구절만 취사선택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많이 알지 못해도 ‘한 말씀’이라도 붙잡고 그 말씀을 ‘삶의 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유익합니다. 성경공부를 깊이 있게 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2. 결국, 진정성입니다.

 

열매는 천천히 맺힙니다. 잘 익어가는 듯하다가도 태풍을 만나거나 병충해를 만나면 떨어져 썩기도 합니다. 열매는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속이 알찬 것이 먼저입니다.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보다는 조금 못 났어도 속이 꽉 찬 사람, 그 사람이 진짜입니다. 사람의 눈을 속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은밀한 중에 보시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께 잘 보이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때론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시기 바랍니다.

 

본문 18절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과정이란, 열매에 연연하기보다는 좋은 나무가 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과수를 심어놓고 그냥 둔다고 좋은 나무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농부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고, 거름도 줘야 하고, 잡초도 뽑아야 하고, 흙도 숨을 쉬도록 갈아줘야 하고, 꽃이 피면 적당히 솎아 주어야 하고, 열매도 적당히 맺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내버려두면, 자잘한 열매만 맺게 되지요. 과수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봄이면 새순이 나오기 전에 가지치기 작업을 합니다. 가지치기하면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데, 새로운 줄기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야 상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지치기란, 묵은 나무를 잘라내는 일이요, 쓸모없는 가지를 쳐버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가지치기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거기엔 아픔이 동반됩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성 있는 사람입니다.

 

3.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런데 가지치기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줄기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원줄기를 잘라버리거나 훼손하면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포도나무, 원줄기 되시는 예수님을 훼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놓고 그 외의 잔가지들은 지혜롭게 쳐낼 수 있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집중해야 합니다. 사탄은 세상 일도 교회 일도 다 잘할 수 있을 것처럼 유혹하고, 세상 일과 교회 일이 상충할 때, 세상 일을 선택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때론 세속적인 복이 곧 신앙생활의 열매인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원줄기를 잘라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몇 가지 원칙들을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권하라고 하신다면 ‘주일 성수’를 권하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원줄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자녀 됨을 확증합니다. 이런 확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원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양분을 얻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일도 오락도 잠도 다 버리시고, 주일예배에 집중하십시오.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또한 새롭게 재창조됨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삶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매로도 알지만, 나무를 보고도 열매를 알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또한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좋은 나무, 좋은 열매 덕분에 기쁨이 충만한 한남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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