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마태복음 7:1-6/ 2016년 8월 17일 수요성경공부
“비판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많은 사람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말씀은 ‘지배자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옳고 그름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님에도, 이 말씀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의 무기가 되어 그들의 불의를 지적하는 이들을 억압하는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어용 종교는 이 말씀의 진의를 선포하기보다는 지배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해석해서 교회의 대사회적인 역할을 경시해왔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에 대한 서슬 퍼런 예수님의 분노와 거짓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은 이 말씀이 단지 ‘입 다물고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1. 사이의 존재
인간은 누구나 ‘사이의 존재’입니다.
사랑과 미움, 거룩함과 속됨, 용기와 비겁, 부드러움과 딱딱함, 불멸과 소멸 사이에서 때론 사랑하기도 하며, 미워하기도 하고, 거룩하게 살기도 하고, 속되게 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용기있는 삶을 살아가고 어떤 때는 비겁하게 살아갑니다.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때론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딱딱하게 살아갑니다. 자기모순처럼 보이는 이런 양면성, 이것이 사이의 존재가 처해있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가 있어서 인간이며, 이 한계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한계는 오히려 축복입니다.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둘 사이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사랑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에는 미움이 존재하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며, 미움을 품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인 것을 아는 것이 잘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되 그를 정죄하거나 그들보다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잘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판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옳고 그름에 대하여 눈 감고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는 변덕스러운 존재’이므로 이런 존재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의 감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2.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타인의 비판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장합니다. 그러나 유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판을 두려워하고, 용납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의 감옥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모든 판단과 비판을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비판할 때에라도 미움과 멸시에서 비롯되는 비판을 하지 말고, 존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들의 흠을 들춰내고, 실패를 꼬집고, 잘못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흠 있는 존재요, 실패할 수 있는 존재요, 잘못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흠과 실패와 잘못을 볼 때에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을 때,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빼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라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합니다. 운전할 때에는 보행신호가 길다고 불평하고, 보행자가 되었을 때에는 신호가 짧다고 불평합니다. 자기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들 합니다. 자기가 하면 다 이유가 있고, 남의 이유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에는 자기 성찰이 없습니다.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은 깊어질 수 없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얄팍한지 알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거나 권력을 얻으면 아주 많은 사람이 피곤해집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비판하지 마라!” 이 말씀은 “입 다물고 살아라!”하는 말씀이 아니라, 상대방의 옳고 그름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3. 자기에게 충실하라.
‘외식’이라는 단어를 유진 피터슨 목사는 메시지에서 ‘쇼’로 번역합니다. ‘쇼’란 ‘남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충실하기보다 남보다 거룩한 척하는 것은 연기하는 것이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외식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에게 충실하여지기 바랍니다.
‘남보다 거룩한 척’하는 외식, ‘척하는 신앙’은 사이의 존재인 인간에서 부정적인 측면들을 자라게 합니다.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자기감정이 판단의 잣대가 되어버리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말씀하고 있으며, 디모데전서 6장 6절에서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은 자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족하는 삶이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봐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기에도 빠듯해서 남의 허물에 대해 가타부타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은 기꺼이 외식하는 이들을 향해서 자기가 손해를 보고, 피곤하더라도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의를 향해 분노했고, 헤롯에게도 ‘늙은 여우’라며 분노했고,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할 때에는 “독사의 자식들아!” 욕설하며, “지옥불에 떨어질 것들”이라고 저주했습니다. 먼저, 자신에게 충실하십시오. 그래야 이웃을 향해 말을 할 때에 힘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하는 거룩한 말은 속된 말보다도 더 더러운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비판이 힘이 있었던 것은 예수님 자신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4.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마라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거룩한 것으로 장난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비판은 무엇으로 합니까? ‘말’로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자라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이 자랍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을 수도 있고, 생명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판할 때에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것’은 복음, 진리, 구원 등을 상징합니다.
본문에서의 개나 돼지는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대적하고, 복음을 의도적으로 짓밟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비판하지 마라!”는 진리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데, 개나 돼지에게 이 말씀이 적용되면 그들이 진리를 짓밟고 진리를 전한 이들에게 상해를 입힌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치지도자들이 바로 서지 못해서 비판하면, 재갈을 물립니다. 자기들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은 이념 몰이로 몰아붙입니다.
5. 거룩함을 가장한 사탄의 유혹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을 하시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때 사탄은 시편 91편 11-1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마십시오.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했듯이 오늘날 사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읽은 ‘비판하지 마라!’는 말씀 같은 것입니다.
앞에서 제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하는 거룩한 말은 속된 말보다도 더 더러운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말로 교인들을 현혹하고, 어리석은 교인들은 그 더러운 말과 교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일들에 흠뻑 취해있었기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며, 한국교회가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면,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든든하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불행은 거룩함을 가장한 사탄의 유혹에 자발적으로 절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남교회는 이 사탄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에게 충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는 가차없는 비판을, 타인에게는 관대하게,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담대하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함을 가장한 사탄의 유혹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비판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입 다물고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