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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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21) - 삶의 순서 바꾸기

  • 관리자
  • 2016-08-03 0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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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서 바꾸기
마태복음 6:25-29/ 2016년 8월 3일 수요성경공부분

지난주에 마태복음 6장 19-24절의 말씀을 통해서 『소유냐, 존재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소유하는 삶과 존재하는 삶이 있는데, 소유하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소유한 것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진 귀신을 아귀라고 하는데, 몸은 앙상하게 마르고 배가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도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소유하는 삶이 목적이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1. 재물이냐? 라는 질문의 의미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청빈, 자발적 가난이 이와 통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꼭 필요한 것조차도 결핍하여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무더운 날씨에 30도를 넘나드는 쪽방촌에서 전기료를 아끼느라 선풍기도 마음 놓고 틀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자발적 가난, 청빈, 무소유’라는 말은 폭력처럼 다가갈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논술시험의 과제로 기아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의 사진을 제시하고, 이와 비교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논하라는 문제였습니다. 이에 한 학생이 이렇게 답안을 작성했습니다. ‘그들을 보고 도와야지, 그들과 비교해서 나는 행복하다는 글을 쓰라는 문제는 아주 잘못된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 6:24)”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재물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재물이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우리가 신으로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2.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재물’에 대한 염려에 붙잡혀 살아간다면 아직도 그는 소유하는 삶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만, 재물은 우리에게 염려를 줍니다. 존재하는 삶은 재물 때문에 염려하는 삶으로부터 자유롭지만, 소유하는 삶은 소유한 것 때문에 적어도 많아도 염려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라’는 말씀은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25절의 말씀은, 소유한 것이 그 무엇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삶에는 순서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잘못되면 우리의 삶도 뒤죽박죽될 수밖에 없고, 염려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텃밭에 땅콩을 심은 적이 있습니다.

땅콩을 거두는데 흙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땅콩이 줄줄이 올라옵니다. 애써 지은 것이니 알뜰살뜰 캡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땅콩밭을 보면 남아있던 것들이 반드시 있어서 심지도 않았는데 듬성듬성 땅콩 싹이 올라옵니다. 온전히 겨울을 흙 속에서 났기에 싹을 낸 것들은 또 땅콩을 맺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짐작은 할지언정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알뜰하게 캐도 땅콩은 남아있을 거야’라는 생각은 하지만, 정말 남아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도 없고, 설령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겨울을 온전하게 보내고 싹을 낼지 아닐지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이런 불확실성에 농사를 맡기지 않기 위해서 종자를 보관하고 씨앗을 심는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는 수고를 할 때에도 사실 예측은 할지언정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 “제가 열심히 했으니 한 만큼 주십시오.”가 아니라, “하나님이 채워주십시오.” 하는 삶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삶에 충실할 수 있고, 우리가 씨앗을 뿌린 것 이상을 거두면 하나님의 은혜요, 적게 거두면 하나님의 섭리로 고백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떤 일에도 근심 걱정하지 마시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온 힘을 다하는 것으로 자족하시기 바랍니다. 과정으로 만족하십시오. 결과는 하나님의 몫으로 남겨두십시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비로소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3. 보라, 생각하여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고,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언제, 공중의 새를 보았습니까? 들에 핀 꽃을 보고, 사색에 잠겨 보셨습니까?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라는 푸념입니다. 하늘이 없어서 하늘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바쁜 삶을 살다 보니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이 없는 것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주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을 빼앗겨서 깊게 생각하고 사색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늘을 봐도 본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보라(seek)’, 이 말씀은 지난주에 함께 나눈 ‘눈’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시는 것을 ‘보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염려하는 삶’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첫걸음을 딛는 것이며, 몸이 밝아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 풀꽃 한 송이도 허투루 지으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의 삶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십니다. 공중의 새나, 풀꽃 한 송이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들보다 특별한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바라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보지 않으려는 혹은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재물로 상징되는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온통 빼앗겨서 공중의 새가 날아도, 들에 백합화가 피어있어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중의 새를 보고 들에 핀 백합화를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4. 삶의 순서 바꾸기

 

재물을 얻기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로 놓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이런 일들은 재물과는 동떨어진 일이 됩니다. 좋은 일, 의미 있는 일이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낙오될 것처럼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이요, 그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삶의 근저에는 ‘내 삶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의식이 깔렸습니다. 자기의 삶에 대해 책임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 삶을 책임져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내 삶을 책임져 주십시오.’ 이 고백은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겠으니,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십시오.’ 하는 삶이요, 이것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염려와 근심’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주 미묘한 차이입니다. 그러나 깊게 본 사람은 압니다. 생각해 본 사람은 압니다. 그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사실은 불안하기도 하고,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 저는 불안과 염려를 키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돌아보면, 더도 덜도 말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하나님은 채워주셨습니다. 혹시라도 더 채워지거나 일찍 이뤄지면 교만할까 봐 부족하지 않을 정도만, 절망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모두가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순간에 내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너무 부하게도 하지 않으셨고, 빈곤하게 하지도 않으셔서 교만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비굴한 삶을 살아가지 않아도 충분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계획’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도 되고, 점점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전에 나를 위해서 내 계획에 맞춰 살아갈 때에는 ‘온갖 걱정 근심’에서 자유로울 날들이 없었는데, 계획하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알아서 인도해 주십시오.’ 하니, 그런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사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계획합니다. 그래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은 거듭되는 훈련의 과정이요, 우리의 육신의 삶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여러분,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도 충분히 우리는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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