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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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19) - 하나님의 갚으시리라

  • 관리자
  • 2016-07-20 0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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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갚으시리라(산상수훈 19)
마태복음 6:16-18 / 이사야 58:6-8 / 2016년 7월 20일 수요성경공부

여름 장마철에 비가 내리고 나면 바구니를 들고 숲으로 놀러 가곤 했습니다. 비 온 뒤 숲에는 버섯이 쑥쑥 올라오곤 했는데, 숲길을 거닐면서 노란 꾀꼬리버섯, 거북이 등처럼 푸른 빛을 가진 청버섯, 산호를 닮은 싸리버섯, 느타리버섯, 간혹 운이 좋으면 영지버섯 등을 따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는 교육을 놀면서 배웠습니다. 이름은 몰라도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지요. 버섯도 군락지가 있고,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이므로 남들이 따기 전에 먼저 따려고 빗방울이 남아있는 숲으로 들어가서 옷이 흠뻑 젖기도 했습니다만, 갓 올라온 버섯을 따서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막 수확한 햇감자를 채를 썰어서 함께 볶아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버섯의 향이 그윽했습니다.

 

그런데 버섯을 따러 가면 독버섯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독버섯이니까 사람들이 따지 않아서 숲 속에 가득 퍼진 것입니다. “나는 독버섯이요!”처럼 생긴 독버섯도 있지만, 어떤 독버섯들은 굉장히 화사합니다. 겉모습에 혹해서 식용하면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아무리 먹음직스러워도 채취를 하지 않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말씀의 의미를 버섯을 따면서 어릴 적에도 생각했었습니다.

 

1. 나팔을 불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악,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지만, 독버섯 소량만 들어가도 나머지 식용버섯들도 못쓰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너뜨리는 것은 커다란 악이라 아니라 악처럼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외식하는 신앙, 겉치레 신앙’입니다. “사람에게 칭송받는 것이 어때서?,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도 ‘그들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는데?”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착한 행실’은 내가 나팔을 불고 드러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을 비추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빛으로 살아가면 어둠 속에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의미는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너희가 사람들에게 나팔 불지 않아도 은밀한 중에 내가 알아줄 것이며, 내가 알아주고 갚아줌을 통해서 다른 이들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의 의미이며, 우리가 외식하는 신앙을 벗어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외식하는 신앙(겉치레 신앙)의 폐해

 

오늘 말씀은 ‘금식’에 관한 말씀으로 이미 6장 1-4의 말씀을 통해서 ‘은밀하게 갚아주시는 하나님(산상수훈 17)’이라는 제목으로 나눈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산상수훈 18번째 시간에 마태복음 6장 5-8절의 말씀으로 ‘구하기 전에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강조되는 ‘외식하는 신앙’에 대한 경고는 오늘 ‘금식’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또 이어집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외식하는 신앙’에 대한 경고가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겉치레 신앙, 쇼하는 신앙, 사람에로부터 갈채를 받고자 하는 신앙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우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외식하는 신앙, 겉치레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개인적인 불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해는 독버섯처럼 퍼지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이 현실은 독버섯이 퍼져있는 숲 같습니다.

식용버섯은 애써 찾아야 하고, 독버섯은 숲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현실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된 낭설들을 퍼트리는 것이 마치 독버섯이 포자를 날려 번식하는 것과 같은 현실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해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혐오하게 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에 혹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을 볼 때에라도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독버섯을 먹고 중독되어 복통을 일으키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외식하는 신앙, 겉치레 신앙의 폐해가 바로 이 ‘독버섯’과도 같습니다.

 

3. 금식과 단식의 차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의식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뭔가 중대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금식와 단식’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행위로서의 금식은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는 과정’입니다. 단식은, ‘자기의 뜻이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곡기를 끊는 행위’입니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살을 뺀다든지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이 단식입니다. 그리고 표준어는 아니지만 ‘굶식’이 있는데,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없어져야 할 일이겠지요.

 

우리는 종교적인 금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요약하면, ‘금식의 목적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금식은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식욕을 절제하는 과정이므로 요란스럽게,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처럼 행동하라’고 권면합니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금식하면,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평소처럼,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유별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티 내지 말고, 그냥 삶 일부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삶을 100%라고 할 때, 1%만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100% 순수한 신앙인이 되어 평상시의 생활과 종교적인 생활의 경계가 없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삶이 곧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데이크리스천(Sunday Christi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 안에서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선데이(Sunday)’가 아니라 ‘올데이(Allday)’ 크리스천이 되시길 바랍니다.

 

4. 금식의 참 의미

 

그러면 ‘금식’은 단순히 곡기를 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사야서 58장 6-8절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사58:6)입니다. 결박, 멍에, 압제는 힘 있는 자들과 권력을 쥔 자들의 폭력을 의미합니다. 그들에 의해 힘겨운 삶을 강요당하는 자들의 편이 되어주라는 이야깁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예언자가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겉치레 예배, 겉치레 금식을 하면서 이윤추구나 하는 이들에게, 거룩한 척하는 이들에게 참 금식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참 금식은 불의의 사슬을 끊고, 일터에서의 착취를 없애주며, 압제 받는 자를 풀어주고, 빚을 청산해 주고, 굶주린 자들과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자들을 초대하는 일 등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칫 ‘빨갱이, 종북좌파’로 몰릴 일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지혜가 없으면, 선한 일로 확신하고 악의 편에 서거나 혹은 거짓선지자들의 현혹에 놀아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곡기를 끊는 것만 금식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이렇게 구체적입니다.

 

악한 일과 악한 생각에 더는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는 것, 그래서 악을 굶겨 죽이는 것, 그것이 금식의 목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나쁜 생각에 더는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는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여호와는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9)”는 말씀이 이뤄질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점은, 금식할 때 요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유명해 질지는 모르겠으나 거룩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하느님께서도 그런 금식은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소위 운동한다는 이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입니다. 겉치레하는 것, 요란하게 하는 것은 ‘연극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열거된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데, 그 일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신앙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 일들을 통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것 역시도 외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성직자들이 대사회적인 입장을 표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은 연극이 아니라 삶입니다. 쇼라면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겠지만, 거듭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은 연극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박수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목적으로 해라.”

 

5. 겉치레 신앙을 벗어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

 

마태복음과 이사야서는 금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공통적으로 ‘겉치레 신앙’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외식하는 신앙,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그냥 하느님께 집중하는 삶이 내 평상시의 삶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일상화입니다. 그냥 신앙이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이 진짜 신앙이요, 진짜 금식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내면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은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으므로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에서 강조되는 것을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내면 훈련’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그의 저서 <Spiritual Formation: The Way of the Heart>에서 내면훈련을 위한 제안 다섯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그것은 1)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2) 전자매체를 끄십시오. 3) 침묵으로 들어가십시오. 4) 침묵 속에서 당신의 시간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5) 주기적으로 소그룹 침묵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침묵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침묵의 훈련을 통해서 겉치레 신앙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겉치레 신앙을 벗어버리면, 우리는 참된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금식,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은밀하게 도우시는 하느님이 그의 삶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참된 금식을 하는 자들에게는 기꺼이 채무자가 되시겠다고 하십니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 그 말씀은 그래서 큰 은혜의 말씀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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