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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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18) - 너희가 용서하는 만큼 2

  • 관리자
  • 2016-07-14 0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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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용서하는 만큼(2) -주기도문
마태복음 6:9-15 / 2016년 7월 13일 수요성서연구

이 내용은 산상수훈 17번째 시간에 나누었던 <너희가 용서하는 만큼(1)>의 두 번째로, 『주기도문』의 부분은 조금 더 수정하고 보완한 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로 ‘기도의 모범’입니다. 습관적으로 주기도문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 한 말씀 의미를 생각하면서 기도하시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되길 것입니다.

 

1) 하늘에 계신

어느 곳에나 계신 하나님,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의미인 동시에, 우리에게서 멀리에 계신 분,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절대로 인간과는 다른 분(他者-절대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절대타자란,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분이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범주 안에 갇히는 분이 아니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하거나, 자신을 하나님(혹은 재림 예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짓교사들이거나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죄인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2) 우리 아버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롬 8:15, 갈 4:6)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닮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삶을 흉내 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그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첫째 청원)

마태복음의 주의 기도에는 두 종류의 청원이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청원(3개), 우리에 대한 청원(4개)입니다. 십계명 전반부 1-4계명이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요, 5-10계명이 우리와 관련된 계명이었는데 이와 같은 형식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필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 하늘을 보는 눈과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개의 눈이 균형을 잡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비상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입니다.

 

4)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둘째 청원)

여기서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그의 통치와 지배를 의미합니다. 이 청원은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므로 ‘나라에 임하옵시며’로 외우면 틀린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은 이 청원기도를 통하여, 역사가 완성되는 종말의 실현을 기원하고, 동시에 불의와 죄와 불합리, 불평등이 판을 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5) (당신의) 뜻이 이뤄어지이다(셋째 청원)

이 청원은 아직도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고 거부되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정의가 침묵 당하고, 의로운 이들이 핍박을 받는 현실에서 우리가 드릴 기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리겐 교부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면, 땅은 이미 땅일 수 없다. 그때에 우리는 모두 하늘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6)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넷째 청원)

문자 그대로 양식이요, 밥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면서 “사람은 떡으로 살 것이 아니다.” 하셨지만, 양식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조건입니다. 이 기도는 누가 드렸을까요? 절박한 사람들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이 기도를 드릴 때에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눔의 기도’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나눌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7)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다섯째 청원)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이웃을 향한 용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조건으로 먼저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무조건 용서가 주어졌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용서가 주어졌으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지만,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의인인 듯 행동하면서 남을 정죄하면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8)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여섯째 청원)

이 청원은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청원이 아니라, 시험을 만나더라도 시험 안에서 보호를 받고 넉넉히 이겨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인간은 땅에 살면서 하늘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탐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하는 사탄의 유혹은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시험 앞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인 온갖 부조리한 일을 외면하도록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사회의 부조리한 일에 대하여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아니오!”를 외쳐야 합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나 정치적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9)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일곱째 청원)

‘다만’은 ‘그러나’가 더 적합합니다. 개인은 선하고 실제로 착해도,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악마적인 속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하나님 대신에 악마의 생각을 따르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 지소서!”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지금 구조적인 악의 문제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주기도문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10)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송영). 아멘.

나라는 모두 아버지의 것이며, 권세도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며, 영광도 아버지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신앙인들이 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자기가 받으려한다면 그 신앙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기도는 “아멘!‘으로 끝납니다.

 

이 말은 아람어인데 “그렇게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또는 “예,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있음을 확고히 다짐하는 것입니다. 추임새가 아니라, 우리의 확신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아멘!”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용서하는 만큼’, 주기도문을 통해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죄인이었던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용서하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지 않으셔도 좋으니, 저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가 아니라, “용서하겠습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용서하는 만큼’ 우리는 신앙의 성숙을 이뤄갈 것이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함을 향해서 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끈이요, 연결고리입니다. 우리가 용서하기를 멈추면,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

2016년도 저물어갑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보다 끝까지 은폐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분단이데올로기라는 망령을 이용하여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싸우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싸움은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이며, 불의하고 불법한 일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데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연말연시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해를 깊게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고요한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 삶 속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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