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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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17) - 너희가 용서하는 만큼 1

  • 관리자
  • 2016-07-13 0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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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용서하는 만큼
마태복음 6:9-15 / 2016년 7월 13일 수요성서연구

기도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마태복음 6장 5-8절의 말씀을 통하여 『구하기 전에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이며, 은밀하게 기도할 것이며, 장황하게 기도하지 말고 단순하게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경건과 떨어질 수 없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와 관련된 모범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역대상 4:9-10), 아굴의 기도(잠언 30:7-9), 주님의 기도(마6, 눅11)는 기도는 대표적인 기도의 모범입니다. 야베스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시도하며, 자기 삶의 지평을 넓혀주기를 간절히 구했으며,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함으로 야베스(=고통)라는 이름 속에까지 새겨진 고통, 자기의 숙명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국교회에서 ‘야베스의 기도’ 열풍이 불었지만, 청원기도의 극대화, 세속적인 물질과 성공 등으로 귀결되면서 기도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굴의 기도는, ‘허위와 거짓을 멀리하게 해주시고, 부하게도 가난케도 마시고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라는 검소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기도로 잘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모범적인 기도로 알려진 ‘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 아멘’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기도’를 통해서 지난주에 나눴던 말씀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단 한 번 불렀으며, 그것도 ‘YHWH’(야훼)가 아니라 ‘나의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Adonai’라고 불렀습니다. 그것도 송구스러워서 ‘Adoshem’, ‘나의 주님의 이름’이라 불렀습니다. 이후에 ‘YHWH’에 히브리어 모음 ‘eoa’를 넣어 ‘YeHoWaH(예호와흐)’로 불렀고, 이것이 Jehovah(예호바)요, 영어식으로 ‘지호버’ 이것이 우리말로는 ‘여호와’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Adonai에 해당하는 ‘Kyrios(퀴리오스)’를 사용했으며, Pater(파테르) 즉, 아버지라 불렀으며, 예수님은 ‘Abba(아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인격적인 관계임을 의미하고, 하나님과 우리는 친자관계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올바른 기도는, 끊임없는 청원이 나이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우리를 끊임없이 순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기도를 우리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대화는 일대 일의 관계로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래서 저마다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은밀한 중에 대화하는 것이고, 그때 하나님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간구를 아시고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혹자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다 아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중의 새들을 위한 먹이를 마련해 놓으셨지만, 찾아서 먹는 수고는 새들의 몫으로 남겨두셨습니다. 기도는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구하시기도 전에 다 아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려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이신 하나님께 인격적인 속성이 없으시다면, 우리는 그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현존을 보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격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바로 기도입니다.

 

2. 기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의 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와 기도에 앞서 중요한 것은 이웃과의 올바를 관계를 갖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기 전에 화해할 일이 있거든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마 5: 24)” 하셨으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도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고백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일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변함없으시다는 고백입니다. 문제는 늘 우리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회개기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회개의 열매가 맺어지기 위해서 남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우리의 회개기도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 콧물 쏙 빼고 기도해도 이웃을 용서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으면 우리의 회개기도도 눈곱만큼도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연결되어 성령의 역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마 5:16), 원수도 사랑하는 것(마 5:44), 이런 것들이 아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것(마 5:48)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이미 모든 계획을 온전하게 세워두시고 준비해 두셨지만, 하나님은 그 계획을 다시 인간과 연결고리가 이어질 때까지 유보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 “하나님은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가?”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대언하게 하시고, 동역자를 불러 일하시게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시기를 바랍니다. 혹여라도,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기도에 힘쓰십시오. 경건한 생활을 소홀히 하다가 하나님과의 연결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너무 쉽게 이 세상 소식에 휩쓸리지 말고, 남의 판단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고, 하나님께 뜻을 묻고 늘 선한 편에 서기 위해 힘쓰십시오. 자기의 이익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세우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캐논으로 삼으십시오.

 

3. 모범적인 ‘주의 기도’를 얼마나 깊게 알고 계십니까?

 

주의 기도는 주님께서 드린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후 이천 년 이상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해온 기도문입니다. 주의 기도는 마태복음(6:9-13)과 누가복음(11:2-4) 두 복음서에 나옵니다. 마태복음의 주의 기도는 산상수훈 가운데 있고,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기간 동안, 즉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중에 말슴한 교훈 중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7개의 청원이, 누가복음에는 5개의 청원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주의 기도가 누가복음의 주의 기도보다 깁니다. 그리고 몇몇 사용된 낱말들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 하늘에 계신

어느 곳에나 계신 하나님,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의미인 동시에, 우리에게서 멀리에 계신 분,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절대로 인간과는 다른 분(他者-절대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2) 우리 아버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롬 8:15, 갈 4:6)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닮아감을 의미합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첫째 청원)

 

마태복음의 주의 기도에는 두 종류의 청원이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청원(3개), 우리에 대한 청원(4개)입니다. 십계명 전반부 1-4계명이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요, 5-10계명이 우리와 관련된 계명이었는데 이와 같은 형식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필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 하늘을 보는 눈과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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