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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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15) - 구하기 전에 아시는 하나님

  • 관리자
  • 2016-07-06 0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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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전에 아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6:5-8 / 2016년 7월 6일 수요성서연구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생활 중 하나가 ‘경건한 생활’입니다. 경건주의자 윌리암 로우(William Law, 1686-1761)는 『경건한 삶을 위하여』라는 저서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바쳐진 삶’을 경건이라 정의했습니다. 성경에서 ‘경건’이란 말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ευσεβεια)’라고 하는데, ‘유(ευ,좋은)’+ ‘세베이아(σεβεια, 두려움)’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좋은 두려움’이란 뜻입니다. 공포나 중압감이 아니라 자발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경건은 어떤 이상이나, 이념이나, 개념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번역본 <성경>에서는 ‘경건’을 ‘신심-마음에서 우러나 언제든 기꺼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마음 자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 하반절에서는 ‘경건이 깊어지도록 훈련하라.’ 고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신앙인으로 서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소명을 알고,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입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 방해가 되는 것들은 멀리합니다.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해로운 쾌락을 멀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상충할 때에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기도하셨고, 분주하게 복음을 전하시는 중에도,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도 한적한 곳으로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 그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모범이고, 그리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신앙인에게 ‘기도’는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통로요, 떼 묻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씻는 행위요, 무너진 마음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면, 평생 남의 신앙만 흉내 내다가 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 신앙의 중추입니다.

 

▪기도는

5절 말씀에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외식’은 헬라어로 ‘휘포크리테스’이며, ‘배우’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는 <메시지>에서 ‘기도할 때에 쇼하지 마라!’고 합니다. 연극을 하면 그것을 보는 이들이 갈채를 보내겠지만,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하는 기도는 화려합니다만, 마음이 담기지 않았기에 진실한 기도가 못됩니다. 진실한 기도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시는 이유는,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라는 말씀입니다. 홀로 있는 시간, 골방과도 같은 곳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골방’은 물리적인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장소는 수단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골방은 ‘마음의 골방’입니다. 즉, 내 ‘마음의 자리’에 나를 세우고, 세상살이를 잊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 대면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리, 그것이 바로 기도의 골방입니다. 그러므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솔직하게 단독자이신 하나님을 대면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다는 것, 그것은 지극히 고독한 일입니다. 그것은 무리를 거슬러 혹은 떠나서 가장 진실한 자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말이요, `그것 때문에 내가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진리`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면, 우리는 솔직하기 어렵습니다. 다 털어놓지 못합니다. ‘골방’에서라는 의미는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 열립니다. 내 뜻이 잘못된 것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더 합당하기 때문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지요.

 

▪단순한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 이것은 단순히 했던 기도를 반복해서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를 유려하게 했어도 ‘기도한 대로 살지 않았다면’ 그 기도는 중언부언한 기도입니다.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기도하고서도 ‘용서할 마음’이 없고, ‘ 화해하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도 ‘화해할 마음이 없으면’ 그것이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많이 천박해졌습니다. 청원 기도가 기도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청원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도는 근원적으로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청원 기도, 마음에도 없는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단순한 기도란, 범사에 감사하는 기도요, 기도한 대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구하기 전에 아시는 분’이심을 믿고, 단순하게 기도하십시오.

 

▪ 경건한 생활과 기도

이 둘은 실과 바늘과 같은 관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며, 경건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활이 곧 기도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한 대로 살아가고자 힘쓸 뿐 아니라, 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해해서 기도원이나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만 기도인 줄 알고, 예수님 흉내 낸다고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그것을 자랑합니다. 간혹, 그런 시간도 필요합니다만, 그럴 때에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티 안 나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말씀을 읽는 것도 기도요,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닫는 것도 기도입니다. 나보다 약한 이웃을 도우며 기쁨을 누리는 것도 기도입니다. 우리의 매 순간의 삶이 기도입니다. 그것이 입으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깊은 기도를 드리려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려면 말씀과 관련된 독서도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관련된 독서를 할 때에는 반드시 지혜를 구하십시오. 요즘에는 기독교신앙을 가장한 이단 서적이 판을 치고, 이단 사설이 교묘하게 우리 곁에 범람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좋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물론, 조금 더 깊은 독서를 했다면, 필자를 선택해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말씀과 관련된 서적이라고, ‘기독교’ 자가 들어간 것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자연에 어떤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해서 자연을 보며 창조세계의 신비를 느끼는 것이 아니듯이, 보통의 책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별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생각이 건강해야 합니다.

생각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도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이 병들면 기도도 헛됩니다. 헛된 기도를 드리게 되면, 외식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건강한 생각을 하려면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냥 넋 놓고 살다 보면 뭐가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악한 일이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선한 일이라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겠으나, 악한 일이라면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으니 심판의 날 왼편에 서서 영벌의 형벌을 받는 이들처럼 항의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행위임을 기억하시고, 은밀하게, 단순하게 기도하시며 경건한 삶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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