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14) - 은밀하게 갚아주시는 하나님

  • 관리자
  • 2016-06-29 07:08:00
  • hit684
  • 222.232.16.100

은밀하게 갚아주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6:1-4 / 2016년 6월 29일 수요성서연구

간혹 강연이나 설교를 부탁받을 때에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력서의 ‘이(리履)’는 ‘신다, 밟다’라는 뜻으로 ‘신발’을 의미하고, ‘력(歷)’은 ‘지내온 일’이라는 뜻이니 ‘걸어온 흔적’이 바로 이력서입니다. 그런데 제출되는 모든 이력서에는 부끄러운 흔적은 말끔히 지워버리기 마련입니다. 어느 누가, 이력서를 제출하면서 흠이 있는 이력을 넣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력서의 한계입니다.

 

요즘 대부분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공고를 하고 이력서를 받습니다. 그러면 이력서가 도착하고, 이력서를 판별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판별을 합니까? 이력서를 받은 이상, 목사의 존재 됨이나 인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학력으로 판별합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가 가진 청빙 절차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력위조가 판을 치고, 너도나도 박사학위를 받으려 하고, 신학교는 학위장사를 하려고 무슨 무슨 박사 코스를 수도 없이 만들어서 박사를 양산해 냅니다.

 

요즘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담임목사는 불법건축을 해놓고서도 ‘영적인 법’이 ‘사회법’보다 상위에 있다고 오히려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큰소리칩니다. 가짜 학위를 받은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런 거짓된 행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큰들 이런 목사와 그런 목사를 신주 떠받듯이 하는 교회에 무슨 구원이 있겠습니까?

 

1.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선행에서 벗어나십시오.

조금 곁길로 빠진 듯하지만,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행도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행을 하거나, 인정받으려고 선행을 하면, 자기의 선행이 드러나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그리고 기어이 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더라고 하면서 자신의 선행을 부각합니다. 이때부터 선행은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재능기부’라는 허울 좋은 말로 남의 재능을 강제로 탈취해 가는 못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선행을 할 때에 은밀하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훈련을 통해서 이제는 선행하면서도 선한 일을 했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경건한 신앙인들이 꼭 해야 할 일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선과 기도와 금식입니다.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일이요, 기도와 금식을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것이 본래의 지향점을 잃고 자기를 자랑하는 수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간부터 그들의 영혼은 병들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병든 영혼들은 자신들의 병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선행하면서, 누가 보기 때문에 혹은 보이기 위한 선행을 하면 그때부터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이런 유혹들을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에는 내적인 감사와 기쁨이 없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하는 경지에 다다르시기를 바랍니다.

 

2. 선행을 닮은 신앙생활

 

선행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순간부터 병들게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체면치레 신앙’이지요. 이런 체면치레 신앙은 결국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일지라도 반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체면을 지키려고 신앙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능에 따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누군가 인정해주고 긍정해 줄 때에 자라나게 되어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그것입니다.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칭찬을 듣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문제는 당사자가 ‘체면치레’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절의 말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을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에서 “너희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것이 연극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여라”로 번역했습니다. 그것이 멋들어진 연극이 되어도 하나님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무대 삼아 연극을 멋들어지게 하고 박수를 받겠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으실 것이며, 거리의 사람들에게 받은 박수가 그 연극에 대한 대가의 전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일하시고, 무대 뒤에서 은밀하게 도와주시는 분이시니, 너희도 하나님처럼 무대 뒤에서 은밀하게 도와주는 삶을 살아가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은밀하게 도와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은밀하신 하나님

 

그런데 왜 은밀하게 도우실까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은밀’은 ‘숨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숨어있지만 존재한다는 의미가 ‘은밀’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습니다. 흔히 연인들의 대화를 은밀한 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남들은 알 수 없는 연인들만의 대화, 그들끼리 완벽하게 통하는 은밀한 대화, 이것은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연인과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이야기한다면, 그는 연인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랑은 곧 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자기들만의 ‘은밀한 대화’가 있고, ‘비밀’이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은밀한 대화’가 있고,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은밀한 대화는 기도요,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아!’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고, 깊이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체면치레 신앙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고, 더는 그런 신앙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행하는 선행을 갚아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바꿔 말하면 은밀하게 숨어서 지은 죄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체면치레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한다 하고, 교회를 위한다 하고, 자기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신앙을 들먹거리고, 결국은 사람에게 박수받으려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꾸짖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일들 역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처럼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 꾸짖음을 당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외식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하며,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갚아주시는 하나님, 저는 이것은 선한 일뿐 아니라 악한 일에도 같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은밀하게 갚아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누리려면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단도리해야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연극하고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이 연극이라면,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일로 끝입니다. 은밀하게 보시고, 갚아주시는 하나님, 연인과도 같으신 하나님, 그분께 박수를 받는 삶을 택하십시오.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그 길이 어떤 길인지 가늠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신앙의 연수가 많거나 직분이 높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람들이 손뼉 쳐 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박수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남교회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밀하게 갚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박수받는 교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로부터도 박수받는 교회가 되고, 성령께서 부흥하게 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한 분 한 분이 되시기 바라고, 그 모든 일에 있어 은밀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