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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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4) -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 관리자
  • 2016-03-30 0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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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마태복음 5:5 / 2016년 3월 30일 수요성서연구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고 폭행합니다. 괜히 여성들 잘못 쳐다보면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서대문 총회교육원으로 출퇴근할 때에 5호선을 타고 다녔는데, 아내가 늘 당부하는 말이 괜히 시비 붙을 수 있으니 지하철에서 사람들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이상한 행동을 해도 절대로 끼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책을 읽어서 매일 하루 두 시간씩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대략 200쪽 정도를 읽으니까 일주일에 300쪽 정도 되는 책 두 권 읽습니다. 덕분에 출퇴근하면서 독서를 많이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간혹 웃는 얼굴,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나보다 젊은 친구의 얼굴이 부드러우면, ‘나도 저 나이 때 그랬을까?’ 반성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의 얼굴이 부드러우면 ‘나도 저렇게 곱게 늙어가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나도 그들에게 전염되어 편안해집니다.

 

산상수훈은 ‘받는 복’보다도 ‘사는 복’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온유한 자’에 다한 말씀도 ‘기업으로 받을 땅’보다는 내가 어떻게 ‘온유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 ‘기업으로 받을 땅’은 별책부록이나 사은품처럼 따라오는 것입니다. 별책부록이나 사은품보다 진품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1. ‘온유’의 다양한 의미들

 

‘온유’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여덟 번째 열매로 나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이것만큼은 금할 법도 없고, 이런 성령의 열매는 넘쳐도 오히려 좋다고 합니다.

 

여기서 '온유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프라우스'입니다. 이것은 사물의 ‘부드러움’, 짐승을 길들여 ‘유순하게’ 되었을 때, ’온화한 사람‘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온유함을 잘못 이해하면 약하고 비겁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짐승을 길들여 유순하게 되었을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예를 들면, 훈련견이 유순하게 된 것은 약해진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적으로 온유하다고 할 때, 제멋대로 행동하던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의 뜻입니다. 결국 '온유'란 제 맘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며 낮아진 마음의 상태를 뜻합니다. 강하던 자신을 깨뜨려 부드러운 사람이 된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히브리어로 '온유한 자'는 '아나윔'으로, 우리말로는 '가난한 자' 혹은 '겸손한 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고에서 ‘가난한’과 스바냐 2장 3절의 "주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아, 너희는 주를 찾아라."고 하였는데 여기 ‘겸손한’으로 번역된 단어가 '아나윔'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한 자, 겸손한 자, 온유한 자가 서로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온유한 삶을 본을 보이신 예수님

 

우리가 산상수훈 두 번째 시간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때 드린 말씀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일이라고 했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요,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을 채우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누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는 ‘가난’과도 통하고, ‘부드러움’과도 통합니다. 그 온유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가셨던 분,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온유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닮을 사람이겠지요. 제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찾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자기를 내세우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는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은밀하게 하는 사람, 자신의 신앙에는 관대하고 남의 신앙에는 철저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

 

그런데 이런 삶을 살아가면 세상은 바보취급을 합니다.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마치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까? 강한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자기와 다른 이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런 정신적인 파시즘은 우리 생활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믿음과 자기 확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자기 확신은 자기가 만든 예수를 믿을 뿐,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착각일 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 그것이 참믿음이라면 겸손합니다. 부드럽습니다. 포용합니다. 자기의 것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못할 때에 자기의 가슴을 치며 아파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에게 꾸중을 들었습니까? ‘바리새’는 ‘구분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구분됩니까? 죄로부터, 죄인들과 구분된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죄인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든 그들을 죄인들과 구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졌습니다. 그들은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부드러우신 예수님은 그들과 다르게 죄인, 이방인, 여자, 병든 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러다 결국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지만, 그래서 강한 자들이 이긴 것 같았지만, 결국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강한 것들을 제압하셨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 것입니다.

 

3. 온유한 자들이 받는 복 - 땅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부동산을 많이 소유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아니지요. 아마도 땅을 많이 가지신 분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주장하실지 모르겠으나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다른 이들의 설 땅이 되어주는 사람이요, 그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어서, 설 땅이 없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 살 궁리만 하면서, 남이야 궁지에 몰리든 말든 나 혼자만 천국에 가겠다는 강퍅한 마음, 단단한 마음에 어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나 하겠습니까? 제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 땅에 설 땅이 없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이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일입니다.

 

봄입니다.

부드러운 새순이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옵니다. 부드러운 새순이 비썩 마른 단단한 나뭇가지에서 올라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현실을 우리는 봄을 통해서 봅니다. 땅이 부드러운 밭에서는 채소가 잘됩니다. 땅이 단단하게 굳은 밭은 농사가 잘 안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신앙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이며, 이 약속의 성취는 부드러운 사람, 온유한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부드럽고 겸손한 신앙생활을 하시어 땅을 기업으로 받으시는 행복한 여러분이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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