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7일 / 『가문비 나무의 노래』 21강 / 김민수 목사
역설 속의 진리
내가 잘 지내면 신은 좋은 분이고,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신이 나를 버린 탓인가?
어려울 때 신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때 신과 씨름해야 한다.
자기만의 행복 안에서 마비된 믿음은 닫힌 믿음이다.
Day 0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우리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과 환경을 용서하게 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같이 하십시오.”(에베소서 4:32)
Day02
크고자 한다면 모두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모두의 종이며, 모두에게 생명을 내어주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위대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이다.”(마가복음 10:43–45)
Day03
인격적인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관념으로 만드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고(창 3:9),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며(창 15),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시고(출 33:11),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과 관계를 맺는 분이시다.
Day04
고통을 겪을 때, 우리 안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평안할 때는 미처 보지 못하던 자신의 교만, 욕심, 무감각을 고통 중에 비로소 보게 된다.
“그들은 잠시 자기 뜻대로 우리를 훈계하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훈계하십니다. 모든 훈계는 당장은 즐겁지 않고 괴로운 것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의와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히브리서 12:10-11)
Day05
만일 몸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착취할 것이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고린도전서 6:19–20)
Day06
고통 가운데 믿음으로 서 있을 뿐이다. 고통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나오는 확신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붙잡는 손길입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성숙한 믿음은 삶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고통은 우리 삶에 무엇인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알렺 주는 암시입니다.
Day 01
고통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삻라는 것입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이사야 53:5)
Day02
위기 뒤에 남는 것은 오로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13)
Day 03
믿음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침까지 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출애굽기 16:19–20)
Day 04
의심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마가복음 9:24)
→ 믿음과 의심이 함께 존재하는 인간의 고백
Day 05
성숙한 믿음은 의심과 혼란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러나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8-10)
→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 속에서 더욱 정제되어 가는 믿음
Day06
“내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자 하는가?”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께서 세 번이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니, 마음이 아팠다.”(요한복음 21:17)
→ 사랑은 믿음보다 깊은 관계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