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9강 북왕국 멸망 후
저자는 남왕국 유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훌륭한 왕과 그렇지 못한 왕으로 나뉩니다. 왕들을 보며, 남왕국 유다가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한 평가에 있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던 신명기계 역사서 저자들은 히스기야를 좋은 왕으로 평가했습니다(왕하18:5).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당시 이스라엘을 야훼 신앙으로 돌리고자 했습니다. 여러 산당과 우상을 없애고,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노력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히스기야는 강대국 아시리아의 압박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므낫세와 아몬
문제는 므낫세였습니다. 그는 남왕국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 저자들은 나라의 멸망 이유를 그에게서 찾습니다(왕하23:26). 그로 인해 이미 남왕국 유다의 멸망이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죽음 이후 단 열두 살에 왕이 된 므낫세는 친아시리아 정책을 폈고 아버지 히스기야가 없앴던 산당과 우상을 재건했습니다. 므낫세는 아시리아에 굴복했고 오랫동안 집권했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시야
아몬 다음에 왕이 된 요시야는 므낫세보다도 어린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화려한 업적을 뒤로하고 너무도 급작스럽게 죽었기에 남왕국 유다가 급속도로 멸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시 선조 히스기야처럼 야훼 신앙을 개혁했습니다. 열왕기하 22~23장에 따르면, 성전 보수 공사 중 발견한 율법책에서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이 율법책은 신명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내용에 따라 예루살렘을 제외한 지방 성소를 없애고, 우상 숭배도 금했습니다. 당시엔 므낫세와 아몬의 영향으로 온 나라에 이방 신 숭배가 번성했습니다. 이때는 예언자 스바냐가 활동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요시야의 죽음 이후로 남왕국 유다의 운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남왕국 유다는 바빌로니아에 멸망했지만, 신명기계 역사서 저자들은 강대국에 멸망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고 강대국과 우상을 믿고 부정과 불의가 판쳤기 때문이었습니다.
10강 스바냐서, 나훔서
요시야가 왕이 되었어도, 백성들은 살기 힘들었습니다. 강대국 아시리아에 바쳐야 했던 막대한 조공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므낫세와 아몬 왕은 힘에 굴복해 아시리아의 이방 신을 섬겼습니다. 요시야는 뭔가를 하기에 아직 어렸습니다. 스바냐와 나훔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예언을 선포합니다.
스바냐, 심판 그리고 남은 자들
우상 숭배가 횡행했던 기원전 630년대 남왕국 유다에서 예언자 스바냐가 할 말은 심판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언자 가운데 강력하게 그날을 예고합니다. 여느 유배 전 예언자들처럼 나라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날이 와도 파멸을 뚫고 살아남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날에도 살아남는 생명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임을 예고합니다. 스바냐서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가난한 백성에 관한 관심 때문입니다. 그는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둡니다. 스바냐 3장 12절,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인 ‘아나윔’은 가난이라는 뜻입니다(공동번역 성서는 ‘기를 못 펴는 가난한 사람’, 개역개정 성서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 예언자 스바냐는 그들로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뤄질 거라고 말합니다. 왕정이 무너지면, 그와 관련된 모든 악습이 사라질 것입니다. 체로 쳐서 돌을 고르듯 하나님은 힘 있는 자들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딱하며 가난한 백성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하실 것입니다.
나훔, 아시리아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정의
강대국도 운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기세가 사라지는 대신 바빌로니아가 팽창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612년, 메디아와 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습니다. 예언자 나훔은 니느웨의 함락을 기쁘게 노래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요나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니느웨를 아끼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나훔의 기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며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이 모욕당했습니다. 남왕국 유다 사람들은 아시리아의 신을 따르는 왕들과 지배자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리아가 멸망한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이방 신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훔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불의를 꺾으실 것이며 폭력에 피 흘리는 이들을 구원하실 거라고 말합니다.
11강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듣기보다 기다리는 식이었습니다. 그는 질문을 던지고 기약 없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끝없는 불의, 끝없는 질문, 끝없는 기다림
예언자 나훔은 아시리아의 멸망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리아가 멸망하면 다시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박국서의 저작 시기는 추정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의 아들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억압과 불의, 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는 악인데, 하박국은 1장 2절부터 울부짖습니다. 역사적 배경으로 추정하면, 아시리아가 멸망하고 바빌로니아가 팽창하고 이집트가 꿈틀대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 요시야는 이집트와 맞서다가 젊은 나이에 전사합니다. 국내 정치도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시리아가 있을 때처럼 친바빌로니아파와 반바빌로니아파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빌로니아를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시대의 악은 아시리아든 바빌로니아든 존재했습니다. 하박국은 또다시 울부짖습니다(합1:12~2:1). 하나님은 정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이뤄지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이뤄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구원의 하나님”
하박국은 기다립니다. 3장에는 그가 쓴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되는 기도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거라는 의미입니다. 여전히 그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박국은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합3:18).’라고 말합니다. 하박국은 눈에 보이는 비극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기뻐합니다. 주님 안에서 살고 그 믿음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하박국서는 저작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박국서는 어느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 억압과 불의, 탄압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그런 현실 속에서도 기도하며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요?
12강 다윗 왕조의 마지막
예레미야서는 요시야 13년부터 예루살렘 백성들이 유배될 때까지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요시야 시대
예레미야서에서 우상 숭배를 비판하는 부분을 요시야가 다스렸던 초기 때로 볼 수 있지만, 기원전 622년에 행해진 요시야의 개혁에 대해 예레미야는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요시야 13년에 예레미야가 태어났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요시야 시대에 많이 활동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기원전 612년에 함락되었습니다. 패권국가가 등장하지 않는 혼돈의 때가 왔고 남쪽의 이집트는 아시리아를 돕고자 하고 남왕국 유다는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남왕국 유다의 왕 요시야는 이집트를 막고자 전쟁에 나섰지만,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맙니다(기원전 609년). 이후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는 남왕국 유다를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대
여호아하스는 아버지 요시야가 전쟁터에서 죽자, 왕이 되었는데 이집트가 개입해 폐위시키고 동생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604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에게 패하면서 패권이 바빌로니아로 넘어갔고, 남왕국 유다도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예레미야는 1장 14절에서 ‘북쪽에서 재앙이 넘쳐흘러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내릴 것이다.’라고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예언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제들도 성전이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로 속였습니다. 이집트의 허수아비인 여호야긴도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오직 예레미야만이 그들과 맞섰습니다.
여호야긴, 시드기야 시대
여호야김이 죽은 뒤에 여호야긴이 왕이 되지만, 바빌로니아가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켰고 여호야긴은 바빌로니아에 굴복했습니다. 이때 첫 번째 바빌로니아 유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왕과 주요 인물들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습니다. 바빌로니아는 또 다른 동생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긴 했지만, 따르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에 저항하는 것에 확신이 없으면서도 아시리아와 연합했던 이집트와 친하게 지내려고 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미 바빌로니아에 통치권을 넘겨주셨다고 여겨 반대하지만,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에 바치던 조공을 중단했습니다. 결국 바빌로니아는 남왕국 유다를 공격했고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기원전 587년, 히브리가 그렇게 원했던 왕정은 이렇게 막이 내렸습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을 다시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단계였다고 말합니다.
질문할 내용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