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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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구약 종주] 4과 5~8강 이사야서 입문, 이사야 1~39장 - 아하스 시대와 히스기야 시대 , 미가서

  • 관리자
  • 2023-11-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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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요약

 

  1. 이해하기 위해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적 배경과 예언의 대상을 잘 살펴야 합니다.
  2.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요구했습니다.
  3. 호세아는 강대국과 이방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고발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5강 이사야서 입문

 

아모스와 호세아가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 남왕국 유다는 어땠을까요?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중요하고 길이도 길어서 건너뛸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인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사야서의 세 부분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전체를 다 쓰지 않았습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이사야가 전체를 썼다(1:1)고 여겼지만, 19세기에는 40장 이전에는 바빌로니아에 대한 언급이 나와 두 명의 저자가 썼다고 여겼고, 1940년 이후부터는 1이사야(1~39), 2이사야(40~55), 3이사야(56~66)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경을 모세가 쓰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주장이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어떤 자세가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각 부분의 시대적 배경

세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작성된 시대입니다. 이사야 1~39장은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를 배경으로 강대국 아시리아의 위협이 두드러지고 이사야가 직접 등장합니다. 그런데 40장 이후부터 이사야는 사라지고 아시리아 문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빌로니아가 등장하고 유배에서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451절에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이름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 시기는 기원전 6세기(600~501)입니다. 그리고 56~66장은 이미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의 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더 늦은 시기로 추정됩니다. 물론 자세히 살피면 1~39장 안에도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 나오고 손질된 작은 흔적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이사야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사야 1~39장을 먼저 다루고 시대의 구분에 따라 나중에 살피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원래 세 권이었는데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닙니다. 책도 개정증보판을 냅니다. 개정증보판은 다른 책이 아니라 같은 책입니다. 뒷이야기를 편집한 사람들도 이사야서를 그들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예언서를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740년경)부터 산헤립의 침공(701)까지 활동이 기록되고 이후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략 이 기간 40년을 활동기간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의 글을 보아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으며 임금이나 고위직 관리와 쉽게 접촉하고 정치 활동을 했던 것과 신학적으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중시한 것을 보아 예루살렘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6강 이사야 1~39: 아하스 시대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800~701)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이사야와 미가의 배경도 아시리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6:1), 기원전 740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직접 등장하는 왕은 아하스와 히스기야입니다.

 

적군 앞에 떨고 있는 아하스 임금에게

북왕국 이스라엘은 팽창하는 아시리아를 막기 위해 영토 분쟁을 겪었던 시리아와 손잡고 이도 모자라 남왕국 유다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남왕국 유다의 임금이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는 국제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다가 시리아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이 둘이 쳐들어와 자기를 몰아내고 뜻을 관철하려 하자, 강대국 아시리아를 끌어들이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때, 이사야는 벌벌 떠는 아하스를 꾸짖는데, 그 이유는 어리석은 판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표징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여기서 임마누엘의 예언이 나오게 됩니다(7:10~17).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아이의 탄생이 하나님이 주시는 표징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를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젊은 여인은 아하스의 아내였고, 그 여인이 낳은 아들은 히스기야였습니다. 임마누엘의 예언은 700년 후에 태어날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표징이었습니다.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침입으로 위태로운 때에 아하스에게 히스기야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알리는 메시지였습니다. 마태 공동체가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뤄졌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결국 아하스는 이사야의 조언을 듣지 않고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시리아는 이때다 싶어 시리아를 멸망시켰고, 기원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면 남왕국 유다는 무사했을까요? 혹 아시리아가 남왕국 유다를 동맹국으로 존중했을까요? 남왕국 유다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아시리아에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조공국이 되었습니다. 아시리아에 바치는 조공은 경제적 부담이었고, 종교적으로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아하스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7강 이사야 1~39: 히스기야 시대

 

아시리아는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한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언제든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었기에 남왕국 유다는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시대, 산헤립의 침공

아하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아시리아로부터 독립을 꾀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시도를 지지하지만, 이집트의 도움받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 아시리아의 위협은 하나님이 남왕국 유다를 벌하는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원전 701,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남왕국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사야는 아시리아에 맞서려는 히스기야를 막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미 남왕국 유다는 황폐해졌고 예루살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전에서 기도하자 밤새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의 군사 185,000명을 죽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원했던 이집트 군대는 움직이지 않았고, 예루살렘을 지킨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사야는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할까요? 그는 예루살렘을 위기에서 구하려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시도를 가당찮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게 하나님의 결정에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세의 침략에 두려워 떨거나 다른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편이기에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강대국의 도움을 거부하며 불의와 편법 대신 정의와 공정을 따라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단순히 믿고 구원받겠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멸망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사야의 예언이 역사적 흐름에서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봤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멸망했고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로 이스라엘을 이끄실 거라고 봤습니다. - 그런데 이스라엘이 깨끗해져서 새로운 미래를 경험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비극적인 역사가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8강 미가서

 

미가는 이사야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사야와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레셋 사람 미가

이사야는 옛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고, 미가는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지방 모레셋 출신으로 전쟁의 피해를 겪은 이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가난한 백성을 억압하는 부유한 이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서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미가가 직접 쓴 부분과 후대에 첨가된 부분을 나누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1~3장은 그가 직접 썼다고 보이지만, 다른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가가 바빌로니아 유배 전에 활동했으니 남왕국 유다의 죄를 고발하거나 멸망을 선포하는 부분은 그가 직접 썼으리라고 보고 구원을 약속하는 부분은 후대에 덧붙여졌을 것입니다. 다만, 미가서 51~5절은 이사야서에서도 나오듯 군왕 메시아사상을 담고 있어 미가로부터 유래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기다리며

군왕 메시아사상은 훌륭한 왕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대체로 왕을 지칭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등장하는 왕과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을 가리켰다기보다 장차 태어날 왕에 관한 기대였습니다. 후대 신약성경을 쓴 이들(특히 마태 공동체)이 이사야서에 등장한 예언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고백했기에 우리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예전 모습대로 회복되지 않고 강대국의 지배가 계속 이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통해 구원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나중엔 다윗 왕조가 무너져도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종말에 이뤄질 메시아 왕국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습니다. 그 기대가 예수님에게 닿은 것입니다.

 

평화의 임금

미가서 52절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8세기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시리아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땅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를 예언합니다. 가장 작은 족속 가운데서 그들을 다스릴 이가 태어날 것이고 그가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다줄 거라는(5:2~5) 말이었습니다. - 남왕국 유다 사람들이 미가의 예언을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강대국의 침략으로 고향이 쑥대밭이 된 남왕국 유다 사람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미래에 대한 섣부른 희망은 절망에 빠진 이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질문할 내용

  1.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2.  다음 시간 범위 49~12(177~197)

 

준비 및 담당 : 허준혁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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