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1강 예언서 입문
무엇이 예언인가?
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미래의 일을 알아맞히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맞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하는 기준은 예언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라는 표현이 이를 잘 드러냅니다(138쪽 주황색 상자 참조).
시대에 따른 예언의 주제
예언자의 내용은 기원전 587년, 즉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바빌로니아 유배 전후로 크게 바뀝니다. 우리는 이 기준을 통해 예언자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139쪽 표 참조). 물론 작성 시기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함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에스겔을 중심으로 유배 전엔 이스라엘의 심판이, 유배 후엔 회복과 구원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물론 유배 전에 쓴 예언서들도 재해석과 편집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담깁니다.
예언자의 역할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라의 멸망을 보고 민족의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멸망했고, 이제 더 예언자는 심판과 멸망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따라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 구원에 이르기를 요구합니다. 특히,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후 예언자는 올바른 삶을 요구하는데 이는 멸망을 막기 위해서가 아닌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해서였습니다. 저자는 이런 흐름(심판과 멸망 이후 회복과 구원)이 바빌로니아 유배를 더 넓은 관점으로 보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예언자는 실패한 것일까요? 나라가 멸망했으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의 구원은 멸망 전 회개가 아니라 멸망 후, 그것도 자기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멸망을 통해 철저한 실패를 겪은 후에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일부분이었습니다. - 저자의 관점은 결과로 모든 걸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귀향한 이후 로마에 의해 다시 땅을 빼앗겼고 로마의 잔혹한 학살로 민족 전체가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적 결과를 맞았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차별당했고 끔찍한 홀로코스트(집단 학살)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그들은 오랜 역사 동안 그들이 당한 대로 돌려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들이 당한 끔찍한 일과 그들이 지금 행하는 끔찍한 일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실패했습니다. 분명한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언자의 실패가 아니라 왕정을 선택한 이스라엘의 실패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만의 확고한 틀(돈과 힘) 안에 갇혔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으로 완성되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2강 예언서의 형성 과정
예언자는 직접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언서는 예언자의 활동과 이야기가 구전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모여 책으로 쓰이고 편집된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언자들의 활동
첫 단계는 예언자의 활동입니다. 예언자는 후대 사람을 위해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는 그들이 딛고 선 자리에서 당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이야기와 활동이 나중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언서를 잘 이해하려면 시대와 배경,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이야기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예언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현시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언서의 문서화
흔치 않지만, 예레미야 36장을 보면,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자기 말을 받아적게 했습니다. 예언을 기록하는 것은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예언이 지금 바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이뤄질 거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직접 기록하기보다 그의 제자나 후손이 기록했습니다. 예언을 기록하고 편집한 이들은 내용을 간략하게 줄이기도 하고 어떤 말은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후대에 읽을 사람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언자의 예언은 시대와 배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시대와 배경에 놓인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서의 편집
처음에 구전으로 떠돌던 것이 문서가 되고 주제나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책이 됩니다. 후대의 편집자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간략하게 줄이기도 하고,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첨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사야의 경우 40~66장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작업이 예언을 변질시킨 것은 아닙니다. 예언 역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간 것이기에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씀이 한 시대와 배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게 하려면 이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처음 이야기한 시대와 배경이 다르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거라면 편집 과정에도 하나님의 영감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서를 당시 시대와 배경이 적용된 내용으로 이해하고 이를 지금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3강 아모스
열왕기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왕에 대해 언급하지만 예언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시대의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인 아모스와 호세아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국제 정세부터 살펴봅니다.
국제 정세와 이스라엘의 상황
엘리야와 엘리사는 모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멸망했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뿐입니다.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서 시달렸습니다. 당시 강대국은 아시리아였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 때는 아시리아가 세력을 키우던 때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사이에는 시리아가 있었습니다. 당시 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국경 분쟁이 잦았는데 아시리아가 커짐으로써 북왕국 이스라엘보다 아시리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 활동했는데, 그는 40년간 왕으로 있으며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자, 태평성대를 맞이했다고 여겼습니다. 국제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대는 여로보암 2세까지가 끝이었습니다. 그가 죽고 불과 25년 뒤에 나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 25년 새 여섯 명이 왕이 되었고 대부분 폐위되거나 살해됐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습니다.
멸망이 다가옴을 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이때,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목자 아모스가 등장했습니다. 드고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니라 남왕국 유다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더구나 목자는 예언과 관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북왕국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모스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북왕국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라며 아모스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고 왕과 사제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언자 아마샤는 그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의 불의를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요구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예언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 저자는 이스라엘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나중에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이야기하며 멸망도 구원으로 가는 단계였다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모스를 쓰고 편집한 이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예언서의 마지막에 덧붙인 거라면 그것은 당시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일이 이뤄졌다면, 예언서의 마지막에 덧붙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해 당시 예언의 의미를 배우고 잘 적용한다면 우리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4강 호세아
호세아가 활동한 시기도 기원전 8세기입니다. 아모스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였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는 더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사회 불의를 비판한 아모스와 달리 호세아는 종교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고발했습니다.
배반한 여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호세아는 아내가 그를 배신하고 다른 애인을 쫓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아내를 찾아와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의 배신이 의미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호세아와 아내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빗댔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 되고 히브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했습니다. 이방 신을 섬기고, 신전을 세우고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가나안의 농사 신이었던 바알을 따르고 하나님을 외면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아내를 깨닫게 했고(호 2:11~15), 이후 다시 맞아들였습니다(호 2:21~25). 이스라엘이 그의 손을 매번 뿌리쳤지만, 하나님은 그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반역하는 인간의 마음을 고쳐 주시는 하나님
호세아는 이스라엘에 아시리아와 군마 그리고 그들이 믿고 따르는 우상을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스라엘의 고백이 따르지 않습니다. 배신한 아내가 그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호세아가 아내를 데려왔듯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을 용서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였거나 스스로 회개했다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이스라엘처럼 회개하지 않고 잘못을 반복해야 할까요? 그래야 더 많은 은혜를 받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질문할 내용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