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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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구약 종주] 3과 7~9강 열왕기, 역대기

  • 관리자
  • 2023-10-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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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요약

 

  1. 히브리를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시고 자기를 믿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2. 그러나 히브리는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3. 왕정은 히브리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외면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에게 지배당하게 되었습니다.

 

7강 열왕기

 

열왕기엔 다윗의 마음과는 달리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임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윗인데, 대부분 낙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왕정이라는 제도는 이스라엘에 득이었을까요? 실이었을까요?

 

솔로몬은 훌륭한 임금일까?

첫 번째는 솔로몬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청했고, 7년에 걸쳐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다윗만큼 완전하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왕상 11:4). 첫째 이유는 솔로몬이 외국 여자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왕정이 수립되기 전, 히브리는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그곳 원주민과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 땅의 다른 신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러 나라의 여인들을 만났고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7년에 걸쳐 성전을 지었지만, 자기의 궁전을 13년 동안 지었습니다. 왕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백성들은 과도한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북부 열 지파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 나라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이 이방 신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왕상 11:26~), 지역에 따른 차별도 작용했습니다. 솔로몬은 조세와 부역을 공평하게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외적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번성기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워낙 전쟁을 많이 치러 영토를 넓혀놓았고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속으로는 썩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한 분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1131~39절에서 예언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을 그가 다스리게 될 거라는 예언을 전합니다. 이것이 신명기계 역사가의 솔로몬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유다의 르호보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솔로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과 열 지파의 지도자들이 르호보암을 찾아가 세금과 부역을 줄여달라고 하자, 그는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잔인한 정치를 예고합니다. 결국 아히야의 예언대로 이뤄졌습니다.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왕조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남왕국 유다는 다윗 왕조가 나라의 멸망까지 이어졌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살던 백성들도 명절만 되면 남왕국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명절만 되면 예루살렘을 찾는 백성을 우려하여 벧엘과 단에 성소를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섬길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더라도 결과는 우상 숭배였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에 예루살렘만 성전을 짓게 된 이유는 히브리가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지역마다 성전을 세우면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그 모양이 각기 다르게 되고 지역 신을 섬기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분열의 결정적인 이유는 르호보암이 백성의 고통을 외면했고 차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로보암보다 비판적 언급이 덜한 이유는 신명기계 역사가들의 기준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모습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신명기계 역사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남왕국 유다의 왕 중에서도 히스기야와 요시야 정도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시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횡행했던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그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이를 종교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들이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인 독립과 같았습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강대국 아시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두 임금이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가들의 평가 기준은 확고했습니다. 외적인 기준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훌륭한 왕의 조건이었습니다.

 

8강 열왕기의 예언자들

 

엄청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왕은 옳은 길을 벗어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말을 대신 전할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셨지만, 왕이 당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거나 전횡을 저지를 때 예언자는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왕들은 예언자의 고언을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엘리야, 야훼 신앙의 수호자

예언자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열왕기상 17장부터 열왕기하 8장에 등장합니다. 엘리야 시대의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러 왕 중에서도 아합이 속했던 오므리 왕조는 상당히 강했습니다. 오므리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겼고 주변 나라와의 관계도 개선했습니다. 특히 페니키아와 가까이 지냈고 오므리는 그의 아들 아합을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시켰습니다. 그 이후, 이교 신에 대한 숭배가 퍼졌고, 신전이 수도 사마리아에 세워지게 됐습니다. 이것만으로 신명기계 역사가들의 평가는 끝났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불행에서 구하기 위해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수많은 예언자와 대결합니다. 결국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한 분이신 하나님을 모든 이들 앞에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요구하는 예언자

엘리야가 연관된 중요한 사건은 나봇의 포도밭 사건입니다.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래 왕이 있어야 했기에 이방 신을 허용했던 아합도 그 법을 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이세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왕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으로 그 포도밭을 빼앗으라고 강권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아합이 포도원을 차지하자, 그 앞에 나타나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이는 부하의 아내를 성폭행하고 부하를 죽게 만들었을 때, 다윗 앞에 나타난 예언자 나단의 경우와 비슷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른 아합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엘리야는 왕이 하나님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열왕기하 212절에 나오는 엘리사의 외침은 엘리야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했던 역할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왕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위험에 처했을 때, 이스라엘을 지킨 병거이자 마병이었습니다(왕하 2:12).

 

9강 역대기

 

역대기에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관점이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또 하나의 역사서, 역대기

신명기계 역사서가 첫 번째 계통이라면 역대기계 역사서는 두 번째 계통입니다.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여기에 속합니다. 물론 이 세 권의 책 사이에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이 많고 전체적인 줄거리가 이어지기에 같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역대기는 기원전 4세기에 쓰였고 이때는 이미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있었습니다. 역대기계 저자는 이 두 책을 참조했고, 왕조실록이나 예언자들에 대한 기록도 참조하고 사용했음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역대기계 역사서와 신명기계 역사서를 비교하면 이들이 왜 두 번째 계통의 역사서를 썼는지를 알 수 있고 공통점과 차이점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의 비교

신명기계 역사서는 오경 다음에 이어졌지만, 역대기는 아담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윗 이전의 역사는 족보로 기록합니다. 특히 역대기의 족보는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에 집중합니다. 유다 지파는 다윗 왕조 때문이고 레위 지파는 사제와 레위인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왕이었던 사울을 족보와 죽음만으로 언급하며 사무엘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를 비교하기 가장 좋은 부분은 다윗과 솔로몬에 관한 언급입니다. 역대기는 다윗(대상 11~29)과 솔로몬(대하 1~9)을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다윗과 솔로몬은 다른 평가를 받았지만, 역대기계 역사서에서 다윗은 성전의 건축을 준비하고 솔로몬은 이뤄낸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역대기계 역사서에서 성전 건축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솔로몬이 역대기계 역사서에서는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역대기에서 가장 길게 서술되는 부분도 성전 건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역대기계 역사서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부정적인 서술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역사의 오점이 되는 이야기는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이후 왕 중에서도 성전을 보수하거나 제사나 예배를 개혁한 왕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는 두 관점

이 두 역사서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쓰인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역대기가 작성된 시기는 성전이 중요했습니다. 페르시아 고레스의 칙령으로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된 남왕국 유다의 지배층은 왕이 없는 나라에서 성전을 중심(제사장, 레위인)으로 권력을 재편하려 했고, 정당성을 다윗과 솔로몬에서 끌어왔던 것입니다. 이미 망해버린 나라의 역사보다 앞으로 세워갈 미래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기계 역사가들은 다윗과 솔로몬만을 중요하게 여겼고,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의 통치는 왕이 아니라 제사나 예배가 행해지는 성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드러냅니다. 왕정에서 성전으로 바뀌어 간 이스라엘의 역사는 로마와의 전쟁으로 성전이 무너지고 불탄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졌음에도 그들이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었는데, 그들의 중심이었던 성전이 무너진 뒤, 유대교가 성전 중심인 제사장 출신의 사두개인이 아니라 말씀 중심의 바리새인의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할 내용

  1.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2. 다음 시간 범위 41~4(137~156)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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