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3강 영토 정복의 역사
여호수아기의 역사적 난점들
여호수아기에서 히브리는 가나안 땅을 차례로 정복했다고 기록되었지만, 사사기에는 각 지파가 산발적으로 영토를 차지했고 그렇지 못한 땅도 있다고 기록됐습니다(삿1:27~35). 여호수아기 안에서도 히브리가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과 같이 사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고(수 23~24장) 다 정복한 줄 알았던 땅을 다윗이나 솔로몬이 다시 정복하기도 합니다(수12:10, 삼하5:6~9). 또한, 천동설의 근거가 된 이야기(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해를 멈추셨다)가 등장하고 기원전 13세기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다고 기록됐지만, 당시 여리고에는 성벽의 흔적이 아예 없었던 걸로 보아 고고학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를 설명하는 가설들
이에 학계에는 50년 전부터 히브리가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과정에 대한 여러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그중 세 개만 소개하면, 먼저 군사 정복설입니다. 인구 이동과 정착이 있었고, 히브리가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중부를 거쳐 세겜까지 정복할 때, 여호수아의 역할이 존재했다고 보는 가설입니다. 다음은 평화적 침투설입니다. 기원전 12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목민들이 가나안 지역에 농민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성경에서 기록한 60만의 대규모 인원이 아닌 소규모의 여러 무리가 지속해서 이동해 정착했다는 가설입니다. 마지막으로 혁명 전복설입니다. 이집트의 하층민이었던 히브리가 가나안의 하층민과 연대하여 가나안 지역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가설입니다.
영토 분배, 하나님 약속의 실현
저자는 세 가설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군사 정복과 평화적 이주 그리고 가나안 내부의 사회적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여호수아기는 첫 번째 가설(군사 정복설)에 초점을 두고 여호수아라는 인물에 맞춰 이야기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히브리 열두 지파에 나눠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진 것을 의미합니다(수21:43, 4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히브리가 어떻게 가나안에 정착했고 지파별로 어떻게 나누었느냐라기보다 이렇게 야훼 하나님의 약속이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히브리가 모세와 여호수아의 유지를 잘 따랐다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땅의 축복을 내리셨을 것입니다.
4강 사사기
모세는 신명기를 통해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의 유언을 잘 지키면 가나안에서 축복을 얻을 것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땅에서 쫓겨날 거라고 했고 실제 그렇게 됐습니다(여호수아의 전쟁). 이제 히브리는 열두 지파 연합체로 구성되었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한 세대도 없고, 모세의 유언도 잘 모르는 이들입니다. 가나안에서 히브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반복되는 역사
사사기는 이스라엘 왕정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사는 히브리어로 ‘שֹׁפֵט(쇼페트)’, ‘재판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판관기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105쪽 주황색 상자 참조). 사사는 히브리의 갈등과 분쟁을 재판하는 역할을 맡기도 하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사령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직을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2장 11~19절을 보면,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해서 저주(보통 땅에서 쫓겨나는)받았다가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셔서 다시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버립니다. 이 같은 역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 충실할 때
이스라엘은 계속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 결과 주변 민족에게 시달렸습니다. 사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들을 구할 때는 하나님을 섬겼다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사사는 아까 말씀드렸듯 그 직을 세습하지 않아 일시적인 직분이었습니다. 사사의 모습도 각기 달랐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지만, 평범하거나 오히려 부족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마음대로 군대를 조직하거나 움직일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야 했습니다.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일부러 숫자를 줄였습니다. 승리와 패배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던 겁니다.
당시 히브리 사회는 왕정이 세워지기 전, 지파 연합체의 모습을 띠었습니다. 사사기는 히브리 지파 연합체의 명암을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역사의 모습처럼 이들의 모습도 한결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셔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사사를 보내셨고, 다시 돌아오게끔 노력하셨습니다. 사사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5강 왕정에 관하여
왕정을 둘러싼 찬반 논쟁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말을 왕정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말일까요? 히브리 지파 공동체는 평등한 지파 연합체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계시고 그들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게 문제였습니다.
왕정을 찬성하는 이들은 지파로 나뉘었던 권력을 하나로 모아 내부의 질서를 잡고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사는 시의적절하게 히브리 공동체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왕정이 아니었던 히브리 지파 연합체는 상비군이 없었고, 다른 나라의 침략당하면 그제야 제사를 드리고, 민병대를 조직하여 침략에 대응했기에 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에 비해 임금이라는 존재는 상비군과 같이 움직이기에 든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하나님만이 히브리 지파 연합체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사 기드온에게 왕이 되라고 요구했을 때도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왕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에게 왕정을 요구하는 것은 이집트의 파라오에 지배받았던 때를 잊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아닌 임금에게 의지하려는 히브리의 모습이 보였기에 하나님은 왕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요담의 비유 삿 9:8~15).
임금은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마지막 사사이면서 이스라엘 왕정을 세운 역할을 한 사무엘은 왕정을 원하지 않았지만, 히브리의 요구를 받아들인 하나님의 명령에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정 요구가 현실적이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약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지파 연합체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왕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엄청난 권력을 위임받은 왕을 세웠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따르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미 권력을 위임받았기에 왕은 자주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뜻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왕에게 충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전달하려고 예언자를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왕정의 찬반 논란은 국가와 정치 체제에 대한 논란이라고 지적하며 왕정 자체가 악하기보다 하나님의 뜻 아래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의 존재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게 했고, 그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가 그 존재(왕)를 치웠어야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6강 사무엘기
배척 받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을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봐선 안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 중북부 지파가 연합하여 세운 왕이었고, 왕이라기보다 총사령관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도 두 해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기에서는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사장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제사를 바친 사건으로 인해 그가 하나님의 배척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삼상 13장). 또,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바친다며 소와 양을 살려두었고(삼상 15:11~31), 이는 하나님의 배척을 받는 두 번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사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사울은 열두 지파 중 가장 약한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 그를 왕으로 기름 부은 사무엘의 존재로 인해 늘 권력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히 왕이 누릴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범한 두 번의 잘못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다윗이 일으킨 왕권 쟁취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 충실한 다윗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은 다윗입니다. 그는 자기의 강력한 사병과 함께 열두 지파를 통일하고 남북 통일왕국의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켰기에 훌륭한 왕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윗 이후부터 왕위를 아들에게 세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성폭행했습니다. 또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우리야를 사지로 내몰아 죽였습니다. - 저자는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고 전왕 사울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고 봤지만, 다윗에게 고려의 왕건이나 조선의 이방원(태종) 같은 모습이 보이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왕의 기록만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역사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저자는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나단의 예언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그의 집안을 일으켜 주고 후손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합니다. 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이 믿음은 형태를 변형하며 이어져 왔다고 봅니다. 후대의 ‘메시아 대망 사상’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과 연결된 것도 나단의 예언이 실현된 걸로 믿었다고 봤습니다. -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다윗 왕조는 단 두 번 만에 끝났습니다. 그의 손자 르호보암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지 못했기에 나라를 둘로 분열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모세의 유언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무엘이 생각했던 대로, 하나님이 예상하신 대로 이스라엘 왕정은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여야 했을까요? 예언자 나단의 예언이 메시아 대망 사상으로 이어졌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지향해야 할 곳이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였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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