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6장 산상수훈의 말씀에는 ‘이방인의 염려’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31절의 말씀에 따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염려가 이방인의 염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방인’이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의 염려’가 발견된다는 것이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뒷전이고, 오로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복이라 가르칩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살면서 이방인의 염려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앙공동체에 속해있다고 할지라도 오로지 이방인의 염려에만 관심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이방인은 구원의 가능성과는 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런 이방인의 염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명령대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를 보라’는 것입니다.
마커스 브릿지워터라는 정원사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라는 식물처럼 삽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식물의 속도에서 배운 삶의 철학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말이 어눌하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몸이 약하다고늘 주변에서 소외를 당했습니다.
그러다 식물을 돌보는 경험을 인생에 접목하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을 이 책에 기록한 것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옵니다.
‘마음 솎아내기, 사람의 마음도 콩 심은 데 콩 난다, 멈춰 있는게 아니라 싹 틔울 준비 중, 뜻밖의 공생하는 기쁨...’
마커스 브릿지워터는 이방인의 염려에 빠지지 않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을 보며 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들에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라고 하셨으니 공주의 새와 들의 백합을 보십시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2023년 9월 17일 주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