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스티그마

  • 관리자
  • 2020-07-24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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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갈라디아서 6:17).”

 

‘스티그마’는 불에 달군 쇠로 소나 말의 엉덩이에 찍어 그 주인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부활하신 예수의 옆구리와 손바닥엔 깊은 ‘스티그마’,
그 상처는 부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에게 믿음의 도구가 되었다.

예수가 ‘스티그마’를 그 몸에 새겼다는 말은,
십자가의 고난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섬김을 능가하는 종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기꺼이 상처를 내보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자복할 수밖에 없다.
그의 몸에 상처를 낸 것은 나였기에,
나의 욕심이, 종인 내가 주인행세를 하며 그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기에.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이후,
기꺼이 예수가 걸었던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예수의 생명,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전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제 만물이 상처입고 신음하는 현실 속에서 다시 돌아본다.
상처를 내보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걷던 길을 걷는다고 자부하던 우리가
자신의 영광만 구하는 것은 아닌지.

나무마다 옹두리가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옹두리’라 한다.
옹두리는 못생겼지만 가장 단단하고, 가장 깊은 향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옹두리 많은 모과나무가 과일망신을 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열매에까지 옹두리의 향을 품게 하여 사랑받는 과일이 되었으니
그 상처가 어찌 의미 없는 것이겠는가?

심지어 나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다 얻는 상처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그분의 길을 따라 걷다 얻는 상처는 향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삶의 향기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보일 수 있는 ‘스티그마’를 가지고 사는가?
그리고 그것이 감동적인 것인가?

 

기도

주님, 내 삶의 상처를 향기로 만들어가는 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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