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주간 설교의 제목을 정리해 봅니다.
'고난 중에 놀라지 말라 하시며(5월 24일),
사랑의 레가토로 살아가라 하시는 하나님(5월 31일),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하시고(6월 7일),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6월 14일),
아무것도 아닌 이들을 위해 오신 주님,
제가 누구를 의지하리이까?(6월 21일)'
COVID-19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은 분명 '고난'의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예측은 우리를 더욱더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도 보았고,
우리 일상에 대한 반성과 소중함도 일깨우는 시간으로 삼아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반성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상황이지만 놀라지 않을 이유는,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때문입니다.
곧 끝날줄 알았던 COVID-19의 장기화는 우리에게 더 큰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반성이 '사랑의 레카토'였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음줄이 되어줘야할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음에 대한 반성이요,
이음줄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단절된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이웃과 자신을 다시 이어,
귀하게 창조된 존재로 살아갈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뤄가십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탄할 수 밖에 없고, 감사할 수밖에 없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창세전에 귀한 계획을 세우시고, 모든 피조무루보다 귀하게 우리를 창조하셨으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존재인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 취급을 받으며 스러져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새로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닌 이들'은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고난을 당하며 고통 속에서 절규할 때에도 침묵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 침묵은 버림이 아니라, 그 침묵을 통해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니,
침묵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광야에 버려진 하갈과 이스마엘, 원수들에게 에워쌓여 언제 죽을지 모를 다윗,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 조롱거리가 된 예레미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바울과 초대교회 교인들의 상황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려워말라'고 하시며, 머리칼 까지도 다 헤아리고 있으니 어떤 시련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니, "제가 누구를 의지하리이까?"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5주간 말씀을 준비하고 전했습니다.
물론 성서일과에 따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맥의 끊임없이 산 속 깊은 샘에서 발원한 물방울이 초지일관 바다를 향해 가듯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COVID-19로 이전처럼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에 '말씀선포'중심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저는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26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배, 식탁과 친교가 없는 예배의 장기화는 또 수많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교회의 공동체성의 상실'입니다. 교회는 예배공동체이지만, 그 예배가 지금처럼 소수가 모여 예배만 드리고 교회를 떠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목사인 저의 기도문은 '설교문'입니다. 지난 5주간, 드린 저의 기도문을 돌아보며 이 아침을 기도로 시작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