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디모데전서 4:8).
배철현 교수는 ‘수련’에 대해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이라고 정의합니다.
삶의 군더더기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방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비만이 되고, 다시 비만을 없애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비만을 줄이려고 급작스런 단식을 하거나, 지방흡입술 같은 의술의 힘을 빌려면 금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요요현상을 겪으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비만이 온 것이 아니기에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려면 천천히 장시간에 거쳐 몸의 독소를 빼내야 한다고 합니다. 식습관을 바꾸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서 요요현상 없이 건강한 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대해서도 그럴진대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일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서서히 바꿔갈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서는 ‘몸의 훈련’도 우리 삶에 유익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훈련이 있다고 합니다.
몸의 훈련보다 더 유익하고 장차 올 생명까지 약속해 주는 ‘경건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왜 훈련일까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되어져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훈련이고, 경건 훈련은 영육을 유익하게 하는 ‘수련’입니다.
수련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입니다. 그래서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을 수련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루 중에서 우리는 이런 수련의 시간을 얼마나 갖고 살아갑니까?
수련은 ‘해야 겠다’는 중압감을 가지게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습관’이 되게 하여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즐겁고, 평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면실로 가서 양치하고 세면하는 것은 ‘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습관이 되어 ‘저절로’하게 되는 일이지요. 이렇게 경건을 위한 수련의 시간을 습관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루 중에서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정하십시오. 일정한 시간도 좋고, 어떤 일과 뒤에(예를 들면, 아침을 먹기 전, 잠자리에 들기 전, 점심 식사를 한 후)하는 것도 좋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습관이 되면,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 줄 알게 되므로 점점 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련은 결국, 일상의 삶과 연결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므로 거기에만 연연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종일 성경만 본다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일정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도 있지만, 매일매일 365일 그렇게 산다면, 말씀대로 사는 일은 언제 합니까? 말씀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삶의 군더더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덜어버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영이 질식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