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을 둘러보다 아주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됫박을 만났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장은 한산하고,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한적한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같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엄중한 시절에도 벚꽃명소나 유흥업소, 유명한 음식점이나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는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어떤 시절이든지 그런것 같습니다.
항상, 없는 사람들만 힘들지요. 호시절이라도, 없는 사람은 여전히 힘들듯 말입니다.
아무튼, '코로나19'가 속히 지나가길 기도할 뿐입니다.
어제는 해질 무렵의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개밥바라기별'이 엄청나게 밝습니다.
하늘은 매직아워, 참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과 밝은 별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미세먼지가 줄어든 덕분이라고 하니, '코로나19'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그간 우리의 삶을 근원으로부터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 역할도 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서 지나가고, 이번 기회에 이 세상이 근원에서부터 좀더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됫박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에 나가 쌀이나 곡물을 사면 자로 됫박을 쓸어 반듯하게 파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쌀값이 금값일 때는 그런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부분 수북하게 담아주고, 덤으로 두어 줌 더 주는 넉넉함이 우리 민족의 정서입니다.
한번은 잘 아는 분이 농사지은 쌀을 바로 정미해서 사온 적이 있습니다.
저도 유기농쌀이라 하고, 쌀값이 워낙 싸서 수고비도 안나오는 가격이라고 하니 제값보다는 더 쳐서 주고 올 생각을 했습니다. 정미되어 나오는 쌀, '저것이 살이구나!' 싶었습니다. 저것이 살이고, 생명이구나....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큰 되로 한 말, 두 말 자루에 담는데 수북하게 담질 않고 평평하게 자로 쓰다듬듯 담아주는 것입니다. 말도 못하고, 얼마나 서운한지, 저도 그분이 부르는 값만큼만 주고 가져왔습니다.
정이라는 것, 그것은 조금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많은 사람을 가리켜 '푼수처럼'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많아야 세상은 살만하지 않을까요?
됫박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종류라기 보다는 크기죠.
됫박은 그 크기 이상 담지 못합니다. 수북하게는 담을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의 됫박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음의 됫박이 작으면, 작은데다가 속임수를 쓰는 얌체같은 상인이 됫박 아랫부분을 볼록하게 만든 됫박같은 마음이라면 이내 그 마음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담긴 것도 없어 수북하게도 아니고 밑바닥이 다 보일 정도라면 더 심각하겠지요.
마음 훈련과 수련과 묵상을 통해 마음의 됫박을 크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됫박에 귀한 것을 담아 누군가에게 줄 때에는 수북하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