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마태복음 28:10)
할렐루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한남교회와 교우들의 가정과 이 나라와 민족 위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부활주일 새벽,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적인 약자였던 여인들에게 먼저 부활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가신 곳은 낮은 땅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에도 삶의 지향점을 낮은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행여나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이 잊을까 가장 먼저 '암하렛츠- 땅의 사람들'에게로 가셨습니다. 하늘로 가신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땅으로 가셨다는 것, 이것은 '복음'입니다.
부활의 소식도 복음이요, 살아나신 주님께서 낮은 땅으로 가셨다는 것도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삶의 지향점도 분명한 것입니다.
부활주일 새벽에 '갈릴리'를 묵상합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에서 '갈릴리'는 어디일까?
온갖 맘몬적인 성공신화가 판을 치고, 인간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는 피조물뿐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의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신음하며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사는 곳이 '갈릴리'겠지요.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의 일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신 곳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곳곳에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먼저 가시어 부활의 소식을 전하십니다.
"너희들도 나처럼 부활하라! 무덤 속에 잠자는 자여, 깨어라!"
저는 멀리 가지 않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품고 있는 죽음과도 같은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고, 기도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 조차도 '맘몬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나를 돌아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절절히 와닿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그러나, 그런 곤고함을 느끼기에 또한 부활의 소망을 품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큰 병은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영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줄도 모르는 것이 정말 큰 병입니다.
그러므로 '결핍'을 느끼는 것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부활로 깨어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일상으로 부활주일 새벽예배를 드릴 때,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릴 때에는 그냥 잠들어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가정예배로 드려야 하는 오늘은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뒤척이고 또 뒤척이다 미명의 새벽에 깨어, 지금쯤 주님께서 무덤 문을 나서지 않았을까, 주님보다 먼저 일어나 부활의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목양실로 나왔습니다.
요람에 활자화된 한남교회 교우들의 이름을 보며, 가장 밝았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웃으며 대화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름에서는 깊은 고민과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이겨나가고자 하는 결의를 봅니다.
어제, 부활절 성만찬 예식을 위한 성물과 부활축하 선물을 나누면서 두 달가까이 혹은 더 많은 시간 만나지 못했던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혹독한 시간들은 잘들 견뎌 주셨습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음에도 오랜만에 만난 목사에게 '힘들다!'는 말씀도 못하고 그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하시는 분들의 안부를 들으면서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 깊은 심연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주, 조금 느낌이 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두달 여, 공동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시간 동안 '정신을 쏙 빼놓고' 살았습니다.
바빠서가 아니라, 사상초유의 일 앞에서 어찌할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당 해야할 일들, 새해를 시작하며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어놓았던 계획들을 많이 놓치고 살았습니다. 분명히 개인적으로 제게 주어진 시간은 더 많았는데, 이전에 바쁘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목회자로서 감당해야할 일, 한남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런 것들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선명해 진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 것이기에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분명하게 느낀 것은 '공동체 예배'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어제(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50% 정도의 교우들이 오셔서 가정예배를 위해 준비한 성물과 부활축하 선물을 받아가시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90% 이상의 교우들이 오셔서 본당에 올라가 기도하시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시간도 얼마나 잘 맞춰서 오시는지, '코로나19'가 무색하게 자동적으로 거리두기도 이뤄졌습니다.
불가피하게 못오신 분들 가정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세상에, 99.8%야'했습니다.
부활의 날입니다.
홀로 목양실에서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며 교우 여러분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만, 여느 부활주일과 다르지 않은 기쁨 충만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준비된 영상을 보시면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와도 같은 우리의 가정가정 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모든 죽음과도 같은 것들을 다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부활주일 새벽에 김민수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