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 관리자
  • 2020-03-19 08:45:00
  • hit1346
  • 222.232.16.10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시편23편의 말씀을 묵상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번 주일(3월 22일)이면 어느새 ‘코로나19’로 인해 주일공동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린지 한 달이 되어간다. 목사로서 사상초유의 일을 겪는 이 시간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 속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는 이들은 본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나타났다.

 

첫째로, ‘일상의 소중함’을 머리가 아닌 삶으로 깊이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병을 고치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은 병이 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기적일 수 있겠지만, 발을 땅에 딛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그것도 머리가 아닌 삶으로.

 

두번째로, ‘종교의 본질’을 깊이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개신교에서 ‘주일 예배’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선뜻,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정예배‘로 전환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으며, 이웃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일이었다. 신천지라는 사교집단이 판을 치게 된 이유에 대해 반성했다. 그리고 주일성수를 고집한 몇몇 대형교회뿐 아니라 작은 중소형교회들이 기초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맘몬)이었음도 보았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것이다. 쉽지않겠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손빠르게 이웃사랑을 위해 기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기로 결단한 교회들은 서서히 부흥해갈 것이다. 그러나, 대형교회든 그렇지 않은 교회든 이기적인 생각과 두려움 속에서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아닌 맘몬을 바라보았던 교회들은 쇠퇴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번에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인간이 보이지도 않는 미물이라 여기던 바이러스 하나도 어찌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다른 생명체들을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돼지나 닭이나 소 같은 것들에게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생겼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인간의 대응방식은 ’살처분‘이었다. 인간 혹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지구라는 큰 생명체를 놓고 생각해 보면 인간처럼 무지막지한 기생충이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진작에 살처분 되었어야할 존재는 그들이 아니라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겸허한 마음으로 ’생태계‘ 혹은 ’생명‘에 대해 깨달아가 가는 중이다.

 

네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점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며, ’인류공동체‘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깊이 자각하고 있다.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세계화‘라는 것이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홀로 자유롭게 서는 인간‘에 대한 고민과 그 홀로 선 인간이 공동체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인류공동체는 운명공동체요, 제 나라, 제 이념, 자기의 종교만을 주장하며 각자도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그것을 겸허하게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다섯번째로, ’코로나19‘의 습격은 지구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점이다.

중국의 공장가동이 멈추자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봉쇄령이 내리면서 물이 맑아지고, 떠났던 물고기가 돌아오고, 배로 북적거리던 항구에 돌고래가 돌아오는 사건을 목도하면서 ’지구‘라는 큰 차원 ’생태계‘라는 큰 차원에서 보면, 축복의 시간이요, 회복의 시간이기도 한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인간이 생태계의 주인이요, 당연히 모든 것을 독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미물과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여섯번째로, 더디기는 하지만,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본다.

대한민국의 경우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했을 때,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자하는 이들이 있었다. 위기를 자신들의 기회로 삼고자 하던 이들(종교집단이든 정치집단이든)이 있었다. 아마 잛게 적당히 끝났더라면 그들의 생각은 적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주어졌다. ’코로나19‘를 대하는 이웃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의 불꽃이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절망처럼만 느껴지던 OECD국가의 각종 통계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일곱번째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더불어 삶‘이 진리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 다른 종으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은, 그것도 머리나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느낀다는 것은 결국 ’삶‘으로 살아질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로, 목사로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소홀했다는 지적들이 있다. 일면은 맞는 이야기지만, “주일마다 공동체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은 왜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도 우리의 소중한 일상이었고, 삶이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것과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나눔(분열)‘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요, 그러므로 내가 선 모든 곳이 교회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행여나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면서 ’주일성수‘를 하고자하는 믿음을 폄훼하거나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