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당신은 울고 있습니까?

  • 관리자
  • 2020-02-08 0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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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울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눈물’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눈물’을 통해서 ‘카타르시스(정화)’를 이루고, 또 누군가 날 위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함께 운다는 것은 ‘공감(compassion)’입니다.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그 아픔을 함께 치유해가고자 하는 출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이라는 선물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픔 때문에 울기는 하지만, 이웃의 아픔을 위해서 우는 법을 잊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의 이야깁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십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기 전에도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주시어 타는 목마름을 해갈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불평합니다. 이번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가짜 뉴스를 퍼트려가며 모세와 아론을 비난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출 16:3)”라며 자신들의 거짓을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노예생활을 하며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이들이 그런 생활을 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들이 아우성치고 부르짖으며 모세를 따라 애굽 땅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그들의 말은,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합리화하기 위한 가짜 뉴스일 뿐 진실이 아닙니다.

 

이들을 달래가며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모세, 그들은 또다시 르비딤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대들며 불평합니다. 그때 모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찌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출 17:4).”

 

이때,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끝나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을까요? 무지한 백성들에 대한 한탄의 눈물, 여전히 고난 중에서 목말라하는 백성, 그들을 이렇게 고난 중에 두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눈물 나는 상황이었겠지요. 그때 하나님은 비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단단한 바위에서 물이 나와 이스라엘은 갈증을 해소합니다.

 

단단한 바위를 치라고 하시며 물이 솟아나게 하신 하나님, 이제 눈물을 위해 바위처럼 굳어진 제 마음의 바위를 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아픔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웃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우리의 마음을 치셔서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우리의 이웃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피조물들이 죽어가며 신음할 때,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이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눈물’이라는 선물, 나는 이 선물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특히, 눈물에 인색한 남성들은 ‘눈물’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을 벗어버리십시오. 남자도 눈물을 흘려도 되고, 울어야할 때, 울 줄 아는 남자가 진짜 남자입니다. 눈물은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고 연약함의 상징도 아닙니다. 여성이 하나님과 가까운 이유는 ‘눈물’때문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신종 코로나로 인해 갈팡질팡하는 인간을 보시며, 지구온난화로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동식물을 보시며,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길을 걸어가는 교회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그분과 함께 울고 있습니까?

 

(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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