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

  • 관리자
  • 2020-02-02 1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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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201n-CoVi)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구촌에 사는 인간의 ‘호흡’이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호흡’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호흡’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으로 인한 대재앙임을 알면서도 욕심을 비우지 않고 유지하고자하는, 혹은 나 혼자 비운들 뭔가 달라지겠는가 하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복잡합니다.

 

초고속인터넷 시대, AI시대를 자랑하는 인류는 알지 못하는 '신종 바이러스'에 어찌할 바 모르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쌓아놓은 바벨탑이 얼마나 무력한 것이고 허망한 것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그동안 쌓아온 인류의 유산이 바벨탑이 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온 이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아들이나 딸처럼 살지 않는 자칭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201n-CoVi)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전염되는 미움, 시기, 가짜 뉴스, 의혹제기가 인류에게 더 무서운 역병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끝없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향해 ‘증오’를 양산해 내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샐리 콘(Sally Kohn)이라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는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라는 책에서 인간이 왜 질투하고 혐오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 개념을 소개하면서 설명합니다.

 

하나는, 歸因오류(attribution errors)입니다.

귀인이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밝혀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어떤 안 좋은 일을 저지르면 선뜻 그 사람이 천성적으로 나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비슷하게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럴만한 상황이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한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확정 편향입니다.

정말 악랄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조차 자신은 악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확신시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확정 편향적 사고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사고와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향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편견’이라는 바이러스가 출몰합니다.

 

고든 앨버트(Grdon Allport)는 편견이란,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 단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혐오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규정합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편견을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과 다르면 모두 ‘적’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반대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혐오와 반대와 증오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과 다른 것은 모두 ‘불의’요,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이웃사랑 = 하나님 사랑), 올바른 관계를 맺기도 전에 분열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왜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겠습니다만, 분단체제에서 오는 이념갈등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이 분단 상황을 이용해서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분열되어 서로 싸우면, 자신들의 뜻대로 정치하기가 수월한 것이지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 르 봉(프랑스 사회학자 1985)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사람은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문명 세계의 사다리 몇 계단 아래로 하락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교양 있는 개인일지 몰라도, 군중의 일부가 되면 야만인이 된다.”

 

소위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군중심리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홀로 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현대인들, 광야와 묵상과 고독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어딘가 소속되어 있어야만 편안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삶을 뒤로하고, 몇 단계 하락한 천박한 삶을 당연한 듯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고속인터넷 시대는 거리로 나가지 않아도 군중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미움, 시기, 가짜 뉴스, 폭력, 혐오 등이 끝없이 양산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소비하고 있으며, 어떤 소식에 양분을 주고 있습니까?

 

고요한 묵상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십시오. 군중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 안에 있는 고귀한 것을 발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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