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거듭남은 계속되어야 한다.

  • 관리자
  • 2020-01-18 17:39:00
  • hit941
  • 222.232.16.100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라는 글에 ‘자연의 리듬은 멈추거나 끝나는 일이 절대로 없다.’는 문장이 있다. 이 한 문장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서 ‘거듭남’ 혹은 ‘성화(聖化)’의 의미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일회성의 거듭남’에 머물러 있다. 맨 처음의 거듭남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기념일’된 듯, 몇 날 몇 시를 기억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화석화된 신앙에 불과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머물러 있지 않으며, 생명은 ‘운동’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리고 떠나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 버리고 떠남은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완전한 결별’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자연은 늘 새롭지만, 그 새로움 속에는 ‘과거의 흔적’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전에는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싹을 틔운 후에야 비로소 꽃을 피우고, 꽃을 버린 후에야 비로소 열매를 맺으며, 열매는 무르익어야만 씨앗을 품는다. 그리고 씨앗은 자신을 키워준 DNA를 품고 또 다른 개체로 피어난다. 전혀 다른 그 무엇이지만, 그 전혀 다름 속에는 ‘과거의 흔적’이 축적되어 있다. ‘그이되 그가 아닌 존재’로 그는 새로운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리듬은 멈추거나 끝나는 일이 절대로 없다’는 말은 진리다.


진리는 무(無)에서 불쑥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잉태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현자(賢者)는, 진리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는다. 소중하고 귀한 것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셨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료가 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일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피워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바로 구도자의 길이요, 신앙인의 길인 것이다.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우리는 진리에 호락호락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요 8:32)’은 맞지만, 그 ‘자유’는 세상적인 가치관의 기준에서는 불편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불편함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고자 할 때, 버리고 떠날 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가 주는 자유함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진리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다시 버리고 떠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 ‘다 이루었다’고 멈추는 순간, 그는 더는 성화되기를 거부하는 화석화된 신앙인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불가(佛家)의 말은 이와 다르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만하면 다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는가? 그것을 확고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부터 죽여라(깨뜨려라!). 거듭남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 ‘자연의 리듬’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듭남을 멈추지 말라고 하신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