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 관리자
  • 2019-02-24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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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 폭압에 우리의 선조는 맨손에 태극기를 들고 비폭력 투쟁으로 대항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치하에서는 좌우의 대립도 종교 간의 장벽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마음 ‘조국의 독립’을 소망하며 헌신했습니다. 삼일운동은 중국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내세운 5,4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간디의 비폭력평화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천주교에서는 100년 만의 참회를 하며 “민족의 고통을 외면했던 과거 반성”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천주교가 일제강점기 천주교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1919년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에서,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의 인사가 참여했습니다. 천주교는 당시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서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의 신자자격을 박탈하고, 동생 안명근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는 등의 친일행적까지 보였습니다. 삼일운동 이후, 기독교도 신사참배 등에 적극 동조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이런 일에는 우리 교단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역사 앞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자신들의 변절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이들은 예수님조차도 로마로부터의 독립투쟁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운동은 독립운동보다 더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비폭력 투쟁이었고, 압제자들의 박해를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 근본적으로 폭력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방식의 싸움,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전복하는 폭력적인 방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닙니다. 평화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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