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공감(compassion)

  • 관리자
  • 2018-12-23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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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성인들 가운데 가장 그리스도와 같았던 분으로 간주합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예수님에 관한 환상을 경험한 후에, 오직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새들과 짐승, 달, 죽음 등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발견했으며,
자기가 이름을 붙인 ‘가난이라는 여인’을 포용했고, 가난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에 의하면, 죽기 직전 그의 손과 발, 옆구리에 그리스도의 상흔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열정적이었고, 가난한 이들과 공감하는 삶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 한해 ‘compass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수난’이라고 부르며, 그의 죽음의 이야기를 수난 설화(passion narrative)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passion’을 ‘수난’을 뜻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passion이라는 단어에는 ‘열정’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뜻을 상기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곧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백성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passion)’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서 하나님의 열정을 봅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공감하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새와 짐승과 들의 풀과 나무와 하나가 됨으로 그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난한 자들과 하나가 됨으로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시대’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의 손톱만 한 아픔에는 모든 것을 잃은 듯 슬퍼하지만, 타인의 죽음과도 같은 아픔에는 둔감합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공감의 능력을 회복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에 그들을 향한 ‘열정’도 되살아납니다.
엄동설한에 ‘가난’이라는 굴레에 갇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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