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희소성이 떨어진 교회

  • 관리자
  • 2018-10-14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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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고염도 귀한 주전부리 중 하나였습니다.
가을에 고욤을 따서 항아리에 넣어두면 한겨울에 먹기 좋게 삭았습니다.
과실의 크기에 비해 씨가 커서 먹을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으면서도 달달한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난주 우연히 고욤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에는 작은 고욤이 주렁주렁 열렸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는듯했습니다.
잘 익어 떨어진 고욤을 하나 주워 먹어보니 떫은맛도 있지만, 단맛도 제법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껏 따서 항아리에 담가둘까 생각도 했지만,
누가 먹을까 싶어 서너 개 먹는 것으로 만족하며 유년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단 것의 홍수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트에 가면 주전부리는 차고 넘칩니다.
세계사를 움직이던 것 중의 하나가 ‘설탕’이었는데(설탕의 세계사), 이제는 커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편안하게 주전부리를 얻는 대신, 그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아주 귀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요즘,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의식이나 종교관들도 그리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요즘은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편의점 숫자보다도 더 많다고 하니 이전엔 동네마다 하나밖에 없었던 교회가 차고 넘칩니다.
물론, 도시 이야깁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희소성이 사라졌습니다.
이젠, 교인들이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가면 됩니다.
교회가 사랑방 구실을 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교회가 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요즘은 굳이 단맛을 느끼고 싶어서 떫은맛을 감내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도 그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선택하면 그만입니다.
단맛에만 빠지면 건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숙성된 신앙, 발효된 신앙은 바치 떫은 고욤이 달달한 맛을 내는 신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온갖 단맛에 노출된 이 시대처럼 신앙도 그리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신앙인들의 행동이 너무도 가볍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너무 쉽게 자신들을 위해 남용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깊게 묵상하는 일은 고리타분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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