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어떤 설교를 전했는지 돌아본다.
설교를 다시 되새기면서 ‘아멘’은 많았는데, 과연 교인들은 변한 것인지 묻는다.
그러나 이내 반성한다.
“나는 내가 설교한 대로 살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했다.
귀에 박히도록 말씀하시고 삶으로 보여주셨건만,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도 그랬는데 내가 뭐라고.
예수님도 하다 하다 안 되어 십자가형을 당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예수님도 변화시키지 못했는데 내가 뭐라고.
용서와 덮어두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러나 결국, 용서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렇게 설교해 놓고, 나는 나를 위하는지 돌아본다.
교인들이 변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내가 근원적으로 저 심연으로부터 변해야 한다.
그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살 수도 없었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먼저 말한 대로 살자.
그냥 걸어가자.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니 길이 된 것처럼, 나도 그냥 걸어가자.
걸어가다 보면, 한 사람 두 사람 따라 걸어오다 보면 길이 되겠지.
걸어온 사람이 있어 길이 있고, 혹여 길이 안 된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지.
나는 그저 구도자의 길을 걷고,
그 길을 걸어가는 중에 깨닫고 말한 것을 내가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내가 뭐라고.
물론, 자기비하는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벗이요, 그분의 계획 안에 있는 소중하고도 위대한 존재다.
이런 과분한 사랑, 이런 사랑을 누리고 살아가는데,
'내가 뭐라고'를 버리고 '감히 나한테'가 되어버린다면 그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거지.
내가 설교한 대로 사는 것초자 이렇게 힘든데, 설교를 듣는 분들이야 오죽 힘들까?
그런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