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어졌습니다.
지난달에만 해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면 일출의 빛이 황홀했는데,
요즘은 새벽 예배를 마친 후에도 미명의 빛 속에 어둠이 더 깊습니다.
동지가 되기까지 어둠의 시간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문득,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런 다양한 계절의 변화 속에서 동식물이 자라고 곡식과 과일이 열매 맺습니다.
겨울이 제대로 추워야 생태계도 온전하게 보전됩니다.
겨울이 너무 따스하면 봄이 각종 병충해가 극성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내가 좀 불편해도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워야 할 이유는 이 세상은 인간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은 장엄하고 신비스럽습니다.
이파리들을 내려놓습니다. 입었던 옷을 벗어버리는 것이지요.
이파리가 없으니 광합성작용이 멈추면서 뿌리는 물을 빨아들이기보다는 물을 배출합니다.
제 몸을 비우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거꾸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제 몸을 비워야만, 추운 겨울에 물관이 얼어 터지지 않습니다.
긴 겨울을 목마름 속에서 보낸 나무들은 봄이 오면 타는 목마름을 풀고자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 힘이 얼마나 좋은지,
이른 봄 물푸레나무나 고로쇠나무에 청진기를 대면 물 빨아올리는 소리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물을 충분히 빨아들이고 그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이면 딱딱한 껍질을 뚫고 부드러운 연록이 새순이 올라옵니다.
저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면서 미리 봄을 봅니다.
신앙인이 어떤 고난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