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습니다.
올해는 극심한 가뭄과 더위 때문이었는지 나무 열매가 흉작입니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알밤을 줍고, 그것을 까거나 쪄서 먹는 재미를 걸러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밤나무 밑을 서성였지만, 잘 익은 밤을 한 톨도 줍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골 다녀오는 길에 햇밤 한 망을 샀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알밤을 바라봅니다.
한 알의 열매가 맺히기까지의 배후에는 인고의 세월이 들어있습니다.
모진 추위와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나무와 풀들만이 시절을 만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겠지요.
알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가을날에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열매의 단맛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나는 열매 맺을만한 풀과 나무를 심은 적은 있는지….
준비된 나무와 풀만이 때를 만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준비가 없으면 계절을 만나도 변신은 없습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계절을 만나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탐스러운 알밤을 깝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벌레가 먹어서 속살을 다 도려내야 하고, 어떤 것은 아예 먹을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벌레가 먹은 밤에는 작은 구멍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곤충이 그곳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것이겠지요.
밤을 까면서 또 느끼는 단상은,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속내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무리 겉모습이 그럴듯해도 자세히 보면 속내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겠지요.
많은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열매만 보고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기까지는 수많은 인고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내면을 더욱더 깊이 하여 우리의 삶도 신앙도 함께 자라나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