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東風(동풍)

  • 관리자
  • 2017-11-26 16:46:00
  • hit640
  • 222.232.16.100

東風(동풍)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동풍’을 겨울바람(冬風)으로 착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겨울바람 정도는 되어야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나중에서야 ‘한겨울에 무슨 풀이 있겠는가?’ 생각하며 다시 보니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동풍의 반대말은 ‘서풍(西風)’이고, 서풍은 하늬바람이며 갈바람(가을바람)이니 동풍은 ‘봄바람’ 정도가 되겠지요. 그제야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가 그림처럼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은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 것이 아니라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서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낀다는 점이지요. 풀은 눕든 일어서든 울든 웃든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동풍’을 뿌리를 든든하게 하는 긍정적인 시련으로 바꿔갑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바람 때문입니다. 바람에 자꾸만 흔들리니까 그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나무의 뿌리를 깊게 하는 또 하나는 가물입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야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이지요. 결국, 바람과 가물이 나무의 뿌리를 깊게 하는 것입니다. 난(蘭)의 꽃을 피우려면 너무 부지런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적당한 갈증과 추위가 있어야만 하는데, 너무 따뜻하거나 수분이 늘 충분하면 이파리만 기형적으로 자라고 꽃대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그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적당한 무관심, 이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동풍,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바람입니다. 피할 수 없는 바람이라면,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프랑스어 ‘시련의 늪을 기어가는 기쁨’이라는 뜻의 ‘쥬이상스(Jouissance – 기쁨)’입니다.

동풍 앞에 서 있는 여러분, 동풍 앞에서 당당하여지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