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능적으로 약한 것은 감추고 강한 것은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연약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약하다 또는 강하다'하는 것은 사회적인 통념에 따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연약한 자들이 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의 말로 바꾸면 '나쁜 나라'입니다. 좋은 나라는 연약한 사람들도 살기 좋아야 합니다.
성서는 끊임없이 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크고 강해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신 7:7) 까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병들고 가난한 자들, 연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연약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래서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연약한 것,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은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연약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듯, 타인의 연약함도 비웃음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봄입니다. 부드러운 새싹이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납니다. 연약함의 영성을 봄날, 눈으로 확인하십시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