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목사의 신앙 에세이 『가을 숲이 던지는 추파(秋波)』
바람 끝만으로도 가을 맛을 느낀다면, 분명 철든 사람이다.
바람의 질감만으로도 계절을 안다는 것은 달력으로 살아온 세월보다는
몸으로 겪은 풍상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은 그 모진 풍상 속에서 절로 몸에 익는 자연의 본능이다.
가을은 깨끗하고 맑다.
‘가을 물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느 계절보다 깨끗한 계절이다.
설악산 낭떠러지 바위틈에 피어난 키 작은 구절초를 찾아온 나비를 보면서
어떤 진한 향기가 해발 1700미터가 넘은 그곳까지 나비를 불러들였을까 신기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하고, 햇살에 드러나는 물결의 문양은 선명했다.
이 가을의 맑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 기호를 ’추파(秋波)‘라고 한다.
여인의 맑고 고운 눈빛도 가을 들녘의 물결 같아서 추파라고 한다.
가을이 가기 전에 가을 숲에 서서 ’가을 물결, 추파‘ 를 바라보고 싶다.
지난 몇 주간 세상이 시끄러웠다. 나라가 평안해야
그곳에 사는 사람도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던 이유는
철이 덜 든 사람들이 설쳐대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세상이 던지는 추파는 아름답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바람 끝으로 느껴지는 깊은 가을기운에 정신이 번쩍 든다.
세상은 본래 그런 곳이 아닌가?
바람 끝으로 전해지는 깊은 가을 속 아주 작은 겨울을 느끼며 다시 삶의 옷깃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