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으아리가 여느 해보다 보름 이상 빨리 피었다.
가물에 시원치 않게 자랐다가 단비 한 번 제대로
맞아보지 못하고 꽃은 떨어졌다.
그래도 씨앗은 맺힐 것이다.
꿀벌도 귀했지만,
어찌어찌 명맥을 보존할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으아리에게 박수를…
저마다 다들 열심히 산다.
그 열심이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일이라면,
더욱 풍성한 삶의 길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맘몬의 안경에 눈이 가려
열심히 살지만 저마다 지옥을 산다.
성령강림절 설교를 준비하며 묵상한다.
액면 그대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그분이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소위 성령파들은 어떤가?
물론,
차갑게 식어버린 냉혈신앙보다야 나을지 모르지만,
오십보백보가 아닌가 싶다.
으아리가 열심을 다해 살았지만,
거기에 단비가 더해지고,
벌과 나비라는 이웃이 더해졌다면 훨씬 더 풍성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사는데 고단하게 산다.
이웃 없이 하나님 없이 각자도생의 삶을...*
2022년 6월 5일 주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