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는 그 자체로 연주될 수 없다.
연주가를 통해서 연주되고, 때론 연주자에 의해 재해석되어 연주되기도 한다.
‘성경에 따르면’ 이라고 말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해석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해석을 절대화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해 자신의 해석이나 생각을 합리화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역사적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했지만, 무수하게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물론 성경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한 자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결국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죽음의 책’이 되기도 하고 ‘살림의 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서무오설’ 혹은 ‘축자영감설’은
성경을 사탄의 바이블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몇몇 구절들을 인용해서 성서를
‘성차별바이블’로 전락시키는 시도를 멈춰야할 이유다.
“말씀으로만!”,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 작동하면 성서무오론과 축자영감설로 가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성서 해석을 해야 할 것이며, 자신의 해석을 절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인 성경을 온전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미숙한 연주자가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하고는,
이것이 “베토벤의 운명이다!”한다면, 얼마나 웃긴 이야긴가?
위대한 연주자라도 ‘베토벤의 운명’을 베토벤처럼 해석할 수 있을까?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오죽하겠는가?
자신만이 성경을 온전히 해석했다고 하는 교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자.
말씀의 신비 앞에서, 깊이 앞에서,
감히 인간이 그 신비를 깊이를 안다고 교만 떠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