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갈래 길 중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그 길의 끝은 어디일까?
청년의 시기에 고민이 많은 이유는 그 앞에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갈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시기에는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선택한 그 길,
모든 인생을 걸고 걸어온 그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황혼기에는 선택할 여지가 없이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시기를 살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걸어갈 길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루쉰은
"희망은 땅에 있는 길과 같아서 사람이 걸어가면 원래 길이 없는 곳에 길이 생기듯이 희망도 그렇게 생긴다.”고 했습니다.
마치,
길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서 생긴 것처럼,
희망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처럼 그렇게 걸어가면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발걸음에 발걸음이 포개어지고 쌓이면 길이 됩니다.
지속적으로 걷지 않으면 길은 곧 사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희망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때 희망인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신이 용서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희망이란 존재와 한 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빛이 있다.’고 설파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 곁에 어슬렁거리며 우리의 삶을 위협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봅니다.
설령, 코로나19와 함께 가야한다고 하더라도,
이 위기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고, 조금만 더 인내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시면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주실 것입니다.*
(2021년 9월 19일 주보글/ 이욱연의 '루쉰을 읽는 밤-나를 읽는 시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