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관리자
  • 2021-07-01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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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15절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기원전 4세기 팔레스타인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요셉을 따라 목수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다가 서른 살에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40일간 광야의 시간을 보내며, 신과 자신과 인간에 대한 묵상을 했다. 예수는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天命을 깨달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의 고백이 아닌, 談話 차원의 대답을 한다.
담화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지식의 고고학>에 따르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한 지식이나 진리를 정당화하고자 만든 상식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는 대답은 담화로서 지배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하는, 자신의 욕심을 투영한 대답들이었다.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정치적인 메시야,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를 전복시킬 그런 분이길 바란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제자들의 대답에는 무관심하지만, 21세기 한국의 기독교는 담화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아니, 그 정도의 대답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구의 교리와 도그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비 콕스(Harvey Cox, 1929~)는 <신앙의 미래>에서, 1~3세기를 신앙의 시대(faith)로, 4~20세기를 믿음의 시대(belief), 21세기 이후를 영성의 시대(soul)로 구분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랜 시대를 지탱해온 ‘믿음의 시대’에는 생활이나 행위보다는 ‘정통과 이단’, ‘올바름 가르침(교리)’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기도와 예배와 자비의 행위를 실천하던 전통들을 잃어버렸다. 그로인해 종교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일들은 추악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교 간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는 21세기에도 ‘믿음의 시대’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대다수다.
 

21세기 영성의 시대에 우리가 생각해야할 기본적인 사유는 오토(Rudolf Otto, 1869~1937)의 ‘거룩’이라는 개념이다. Numinose(거룩)는, 인간의 이성과 오감과 자아를 뛰어넘는 神性에 대한 경험이나 실현을 의미한다. Numinose는 ‘신비’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그 어원이 numen(신적인 힘)에서 왔기 때문이다. 신적인 힘, 신, 절대타자는 모두 인간의 이성과 오감과 자아를 뛰어넘기에 신비인 것이다.

라틴어 mysterium(신비)은, numinose 후의 반응을 나타내는 단어로, numinose를 경험한 후 전율tremendum과 매혹fascinosum이라는 감정이 생긴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가 불타는 장면을 보았을 때,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자 곧 병이 나았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신비함을 경험하게 되면 경외심(외경)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이러한 신비로 가득하다. 그의 거룩하심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에 충만하고,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룩함의 정점에 선 이들은 전통적인 교리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예수 역시도 전통적인 교리를 넘어섰던 사람이었다. 그 힘, 그것이 바로 예수의 charisma였던 것이다. 

거룩한 신비와 전율을 통해서 체득하는 힘을 우리는 Carisma라고 한다. 
모세와 예언자들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진 카리스마는 numinose와 mysterium을 경험한 자에게 절대타자가 주신 선물(은혜/ 달란트)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聖人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바로 이런 절대타자의 경지를 경험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리도 각자 聖人이 되어야 한다.  각자 성인이 되려면,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설 수밖에 없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대답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믿음의 반석에 굳게 선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철현 – ‘위대한 인간의 질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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