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어버이 주일, 그림자 노동을 묵상하다

  • 관리자
  • 2021-05-0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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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길을 돌아보았답니다. 그 길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혀있었는데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걸어간 흔적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걸어갔던 흔적이 남아있는 시간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며 홀로 걸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시간들은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발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신의 발자국이었지요. 그 사람은 신에게 서운해서 이렇게 물었고 신은 이렇게 대답했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이시여, 제 삶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엔 어디에 계셨습니까?"
"너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왜 발자국이 한 사람의 것뿐입니까?"
"그땐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갔단다."
"그건 당신의 발자국이었군요."
"......."
 
그림자, 그것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지만 실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실체입니다. 그림자 없는 실체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존재로 동양에서는 귀신이라 부릅니다. 존재하는 것들 중 바람, 그림자 없어 자유로운 바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그림자를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나를 놓지 않고 동행했던 존재, 그는 그림자입니다.
 
'빛'의 그림자는 '어둠'입니다.
어둠이 있어 빛이라는 존재가 드러나고, 어둠이 있어 만물은 그림자를 내려놓고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로 삼라만상이 채워져 있으니 인공의 빛에 길들여진 것들이 병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함께 해 온 그림자.
기쁠 때 뿐 아니라 내 삶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도 함께 했던 그림자.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동행하며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그림자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했음을 돌아봅니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산문집 중에 '여름 살림살이'라는 글 속에서 '그림자 노동'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그림자 노동'이란 말이 있는데 집안에서 식구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보살피고 거들며 헌신하는 일을 가리킨다.
내가 절에 들어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보살핌 속에서 살아왔는지 요즘에 이르러 새삼스레 부쩍 마음이 쓰인다. '그림자 노동'의 은혜 속에서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어찌 법정 스님만 '그림자 노동'의 은혜 속에서 살아왔겠습니까?
나 역시도 '그림자 노동'의 은혜로 살아온 사람이며 '과부의 두 렙돈'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이란 헌금에 대한 근본정신을 잘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는 전 재산을 바친 과부처럼 헌금하라는 것으로 애용되지만 나는 이 말씀의 진의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것,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요, 목숨과도 같은 것)은 과부의 전 재산이요 가장 소중한 것이니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허투루 사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종교가 타락하면 그림자 노동의 은혜, 과부의 두 렙돈의 소중함은 잊혀지기 마련인가 봅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그림자처럼 늘 나와 동행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만 나의 그림자가 되어준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범위를 넘어선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있었음에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자로 살아가다 보니 그저 땅바닥, 가장 낮은 곳에 스스럼없이 엎드려 살아가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내가 살아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 들어있는 익명의 손길들에 대해서 내가 돈을 지불하고 샀으니 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권리가 나에게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사용하고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프린터에 들어있는 하얀 종이 한 장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던 어느 나무로부터 시작되어 수많은 사람들(그들 역시도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존재)의 손길을 통해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이며, '인쇄하기'라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과물들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하겠지요. 물론 그 과정들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수많은 그림자 노동의 연관관계들을 돌아보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 낮은 곳, 그래서 때론 그림자 없는 것처럼 살아가며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림자 노동'을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피를 나눈 내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먼 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이 땅에 온 외국인노동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이든지 모두가 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서로에게 '그림자 노동'이 되어주고 있으니까요.
 
나는 어떤 '그림자 노동'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하다 '삶에 지친 그대에게' 그림자 노동을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의 작은 글들 하나하나마다 애정을 갖고 읽어주시며 글 쓰는 맛을 새록새록 키워주시던 어느 독자에게서 얼마 전 쪽지를 받았습니다. 쪽지의 내용으로 보아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이 글을 드리고 싶었고, 삶의 무게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 그림자처럼 동행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주위를 둘러보시면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늘 우리와 함께 했던 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위해서 '그림자 노동'을 해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땀방울, 소망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절망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을 절망시켜 버리는 것, 그것이 그 동안 내가 받고 살아온 '그림자 노동'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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