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우리 안에 깃드는 것

  • 관리자
  • 2026-10-04 0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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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옆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네 안에 깃들 거야.”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세계숲』에서 만난 문장이다.
에리카에게 쓴 이 짧은 문장을 읽다가 한참을 머물렀다.
특별히 '깃들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우리 안에 깃들어 우리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하늘,
어머니의 거친 손,
숲에서 만났던 작은 꽃들,
누군가 건네준 따뜻한 말 한마디......
그런 것들은 지나갔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안에 깃들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만 깃드는 것은 아니다.
상처와 슬픔, 미움과 두려움도 깃든다.


우리가 무엇을 품고 살아왔는가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 안에 깃드는 것들을 모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시대와 장소, 부모와 환경을 선택할 수 없듯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일들도 그렇다.
어떤 것은 선물처럼 다가오지만, 어떤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 우리를 짓누른다.
때로는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을 그저 견뎌야만 할 때도 있다.

내 삶을 이루는 것 가운데 내 힘으로 얻은 것은 얼마나 될까?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
뜻하지 않게 열린 길,
절망의 순간에 내밀어진 손길이 있었다.
신앙인은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한다.
은혜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게 다가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도 은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고 나서는 그렇게 고백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고통의 시간에도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의 동행을 믿을 뿐이다.
고통의 현실에서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에 함께 아파하시며 그 고통이 우리 삶의 마지막 말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우리 안에 깃드는 것도 달라진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 안에 깃들면 우리의 눈길과 손길도 달라질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쌓는 일이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깃들어 삶으로 드러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조심스러워진다.
내 안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내려놓으며 살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이다.

상처를 받았다고 반드시 상처를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받은 기억이 희미하다고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망치다.
굳어버린 마음을 두드리고, 나를 가두고 있던 확신에 균열을 낸다.
그 틈으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스며든다.

우리는 우리 안에 깃든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완성된 존재는 아니다.
오늘도 무엇인가 우리 안에 깃들고,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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