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마다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늘과 땅, 바다와 강, 나무와 풀,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보시며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맡기셨습니다.
인간은 창조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를 돌보도록 부름 받은 청지기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은 산업화를 먼저 이룬 나라들의 몫입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 산업 국가들은 기후위기에 큰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역시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탄소를 배출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피해는 이상하리만큼 불공평하게 찾아옵니다.
많이 누리고 많이 배출한 나라들과 그 결과를 먼저 감당하는 나라들이 서로 다릅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 고통을 쉽게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네팔의 홍수는 네팔의 문제이고, 아프리카의 가뭄은 아프리카의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려온 풍요와 그들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원인에는 우리가 함께 있으면서 결과에서는 그들을 홀로 남겨두는 것,
이것이 기후위기의 가장 불의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창조세계를 맡기신 것은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잘 돌보고 지키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이 자기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다른 생명이 살아갈 몫을 남겨두며, 다음 세대가 누려야 할 것까지 탐내지 않습니다.
창조절을 맞이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 때문에 누군가 더 큰 불편을 감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와 소비하는 물건 때문에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삶의 터전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청지기의 삶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는 것과 다른 이가 당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책임의 크기도 그래프의 크기만큼이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