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쌀 한 톨 속 생명의 신비

  • 관리자
  • 2026-05-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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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철이 돌아왔다.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이 트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침종(浸種)’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종자를 물에 담근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큰 항아리에 소금을 풀고 볍씨를 넣으면 알곡은 가라앉고 쭉정이는 뜬다. 농부들은 그렇게 죽은 씨앗을 골라냈다.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것 같다. 물속(고난)에서 비로소 알곡과 쭉정이가 드러난다.

선별된 씨앗은 다시 물속에 담긴다.
씨앗은 물을 머금으며 잠들어 있던 생명을 깨운다. 그리고 하얀 싹이 돋아난다. 그것을 ‘최아(催芽)’라고 한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하우스나 논보다 밭 한쪽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판을 키웠다. 이른 아침, 비닐에 맺힌 물방울을 막대기로 툭툭 치면 연둣빛 싹들이 보이곤 했다. 생명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모내기는 고된 일이었다.
허리를 굽혀 모를 심다 보면 처음엔 재미있지만, 이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벼가 자라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아무리 어려도 벼와 피를 금세 구별해 낸다. 다 자란 뒤보다 어릴 때 뽑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부지런한 농부의 논에는 피가 없다. 노련한 농부는 피를 뽑다 벼를 뽑지 않는다.

벼꽃이 필 무렵이면 논에는 벼메뚜기가 날아다녔다.
어린 아이들은 그것을 잡아 들기름에 볶아 먹었다. 벼꽃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꽃을 ‘자마구’라고 불렀다. 꽃이 떨어지면 벼가 맺히지 않으니 어른들은 자마구 필 무렵 아이들이 메뚜기를 잡으러 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화려하지 않은 꽃, 그러나 그 작은 꽃 하나가 결국 한 톨의 쌀이 된다.

추수와 탈곡의 날은 잔칫날 같았다.
발로 밟으면 탈곡기가 돌아가고, 볏단을 이리저리 돌리면 낟알이 수북하게 쌓였다.

그리고 방앗간에서 도정한 쌀로 밥을 지었다.
고봉밥에 김 한 장이면 세상을 다 얻은 듯했던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도 잊어버린 기억을 서울에서 자란 나는 품고 살아간다. 그것이 지금 내 영혼의 토양이 되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밥은 하늘이다.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한 톨의 쌀과 비슷하다.
우리는 모두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침종과 탈곡, 도정의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누군가를 살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때로는 아프고 벗겨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생명을 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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