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

  • 관리자
  • 2026-04-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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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행위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그저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습관과 편견대로, 자기의 기준으로 상대를 보는 행위입니다.
‘본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살펴보는 행위’의 주체인 우리는 보고 싶은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저 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의미는 ‘관찰’입니다.
관찰은 깊이 보는 행위입니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의도를 가지고 볼 뿐만 아니라 그 움직이는 모습을 온전히 보기 위해 집중하고 몰입합니다.
그래서 ‘관찰’이란, 가시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안 보이는 것을 보는’행위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뇌와 눈을 훈련해 왔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 배후에 있는 것을 인식하려면 내가 지닌 관습과 편견과 시선을 제거해야 합니다., 저마다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야하는 것이지요.
(이상- 배철현의 ‘심연’ 요약)
 

우리는 세 번째 의미의 관찰을 해야 합니다.
어떤 눈으로 타자(他者)를 보는지에 따라 타자뿐 아니라 자신도 달라집니다.
편견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고, 바라보는 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므로 ‘무식’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식은 ‘알지 못한다’는 정도의 뜻이 아니라, ‘보이는 것만 보고, 시선이 고착되는 것이 무식(無識)입니다. 무식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고, 자기의 우월한 힘이나 위치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관철하지 못하면 안달하는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치 정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 듯 착각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 힘을 가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글도 유심히 ’관찰‘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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