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히야신스의 시간

  • 관리자
  • 2026-01-04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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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졌을 때, 나는 구근을 캐냈다.
흙에서 분리된 구근은 한동안 그늘에서 말려졌고,
계절은 아무 말 없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흘러갔다.

겉으로 보자면 끝난 생처럼 보였다.
목마름을 견뎌야하는 시간이었고, 잎도, 색도, 향기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말라 있는 동안에도 구근은 자기 안에 생명을 쌓아 두었고,
이내 늦가을 흙을 만나 다시 한 번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목마름과 추위. 
그 시간은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게 하였을 것이며,
생명을 피워내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에는  빠른 성장도, 과한 기대도  모두 멈춘다.
겨울을 지나며 흙은 차가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꽃은 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난다는 사실을 히야신스는 조용히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무 소리도 없이 꽃이 피어났다.
자기 때가 되자 피어났다.
자기의 때가 되어도 준비되지 못한 꽃은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과정을 바라보며 배운다.
우리 삶에도 꽃이 없는 시간이 있고, 아무 성과도 없는 계절이 있으며,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생명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히야신스는 말한다.
마르고 추운 시간을 통과하지 않은 꽃은 없다고.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은 끝내 자기 계절에 다시 피어난다고.
지금 꽃이 없다고 해서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가장 깊은 곳에서 꽃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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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4일 신년주일에 목양실에 피어나기 시작한 히야신스를 맞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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