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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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묵상 51 –빛의 날과 어둠의 날 (11:7–10)

  • 관리자
  • 2025-08-3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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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묵상 51 – 빛의 날과 어둠의 날 (11:7–10)

 

“빛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사람이 많은 날을 살면 그 모든 날에 즐거워할 것이나, 어두운 날들도 많을 줄을 기억하라.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전도서 11:7–8)


전도자는 오늘의 본문에서 삶을 빛과 어둠의 이미지로 노래한다.
해를 바라보는 것, 빛을 보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의 즐거움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이자 기쁨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잊지 말라 한다. 
인생이 길어질수록 어두운 날도 많아진다는 것을. 
여기서 우리는 전도서의 독특한 시선을 본다. 
그는 단순히 “헛되다”만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는 사람, 허무와 희망을 함께 노래하는 사람이다.

 

삶의 날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기쁨의 날이 늘어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슬픔의 날도 함께 쌓인다는 말이다. 기쁨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어둠 또한 인생의 날 속에 새겨진다. 그러나 어둠은 단지 허무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빛을 소망한다. 한밤중의 깊은 어둠이 새벽을 더욱 기다리게 하듯, 슬픔의 시간은 기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폴 발레리는 “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다”고 말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귀하다. 어두움 속에서만 우리는 빛의 선물을 새삼 깨닫는다. 전도서의 노래는 그래서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빛의 날을 기뻐하며, 어둠의 날을 지나면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다는 소망의 노래다.

시인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은 밤이 깊을수록 빛나는 별과 같으니,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그립다.”

이 시구처럼 어둠은 빛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을 더욱 그리워하게 한다.
전도자가 말하는 “어두운 날이 많을 줄을 기억하라”는 말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라는 권면이다.

청년의 날, 곧 젊음의 시기를 그는 다시 강조한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라.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쁘게 하라.” 

그러나 동시에 덧붙인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심판하신다고. 젊음은 무한한 자유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이 동반된 선물이다. 방종으로 기쁨을 탕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게 누리라는 권면이다.

삶의 빛과 어둠을 함께 노래한 시인은 김현승이다. 
그는 <어둠 속의 촛불>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둠은 어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촛불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전도자는 말한다. 
어두운 날도 많을 줄 알라.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허무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더 갈망하고 빛의 날을 더 깊이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다.

젊음은 빛의 날이다. 그러나 젊음도 사라진다. 
전도자는 “근심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육체에서 고통을 제하라”고 한다. 
이는 무책임한 쾌락 추구가 아니라, 허무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젊음은 지나가고, 늙음은 찾아오지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인생 속에서 소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전도자의 노래 속에는, 동시에 빛을 소망하는 희망이 숨어 있다. 허무는 삶의 전부가 아니라, 희망을 향한 통로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을 때, 인생은 단순한 헛됨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로 채워진다.
 

기도

주님,
빛의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두운 날도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허무를 노래하면서도 빛을 기다리는 소망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젊음의 날이든 늙음의 날이든, 언제나 주 앞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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